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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clfi.org/pubs/icl-ko/2026-turning-point
The World at a Turning Point (영어), Spartacist (English edition) 호외 , 로부터 번역됨

스파르타시스트 호외 영어판,2025년 11월 13일자로부터의 번역

세계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혁명적 공산주의 인터내셔널(RCI)가 주장하듯이, 우리는 “전세계적인 대중운동들, 반란들, 봉기들, 그리고 혁명들의 분출”을 목격하고 있는가? 혹은 사회주의평등당이 믿는 것처럼, “링컨의 땅[미국]이 … 트럼프와 트럼프에 충성하는 오만한 자들에 의하여 독재자가 되려는 하는 자들의 땅으로 변형되고 있는 중인가”? 아마도 양쪽 모두일 것이며, “앞으로 몇 달 내에, 우리는 준혁명적 혹은 심지어 혁명적 세계정세를 열지도 모르는 전쟁들, 혁명들, 그리고 반혁명들의 융합된 과정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혁명적 공산주의인터내셔널 동맹). 만약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우리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에 관하여 상충하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은 혼자가 아니다. 동지들이 어디를 보든, 동지들은 “파시즘의 대두,” “달러의 붕괴,” “주식거품,” “인공지능 혁명” 그리고 “세계대전”에 관한 논평들을 발견할 것이다. 일관된 모습은 없으며, 모든 것이 어지러울 정도이다.

만약 그렇게도 많은 혼란이 있다면, 그것은 세계가 빠르게 결정적인 전환점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폭풍전야 처럼, 우리는 많은 혼재된 신호들을 받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남는다.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맑스주의자들로서 이것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러 저리 머리기사를 뒤지거나, 최근의 여론조사만을 살펴보지는 말아야만 한다. 우리는 세계적 사건의 내부 동역학을 이해하고, 부차적인 반대흐름들로부터 지배적인 흐름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이 방법은 실수들이나 예견되지 않은 사건들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인상주의에 휩쓸리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제공한다.

국제공산주의동맹에 있는 우리는 지금이 노동인민들의 삶의 조건들이 수십년 동안 전례가 없는 정도로 공격받게 될 자본가 공세라는 반동적 시대의 서막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것으로 우리가 자본가들의 공세가 일방적인 전투일 것이며 우리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서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정반대이다. 강철같은 단호함, 방어행동들, 그리고 진지한 준비가 필요하다. 저항이 강력할수록, 노동계급은 더 빨리 공세로 나가갈 수 있다. 그러나 효과적으로 이것을 하기 위해서는, 선진노동자들과 사회주의 운동이 사태들의 리듬과 방향을 올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불행하게도 위의 예시들처럼, 대부분의 좌익들은 노동계급 안에서의 지배적인 분위기들에 대하여 특히 고려하지 않은 채 현실과는 완전히 상반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세계가 오른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와중에, 그들의 대부분은 총파업들과 봉기들을 선동하면서 좌선회하고 있다. 현실과의 고통스러운 충돌을 피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종파적 눈가리개들을 벗고, 현재의 세계 정세에 관하여 진지하게 학습하고 논쟁하는 것이 공산주의자들에게 필요하다.

1부: 세계정치의 주요한 경향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계정치를 모양짓는 주요한 요소는 미국이 세계무대에서 행사하는 지배적인 역할과 미국의 쇠퇴하는 경제력 사이의 늘어나는 격차이다. 1990년대와 2000년대 미국의 논란의 여지없는 패권이 억압적이지만 안정적인 국제질서를 보장했다. 미국의 구심력이 약해지고 있는 지금, 더욱 더 많은 지역분쟁들이 발생하고 있고, 국제경제는 불안정해지고 있으며, 미국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필사적인 시도 속에 구 질서를 갈기갈기 찢고 있다. 이 상황에서 트럼프가 등장했다.

트럼프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지난 1년 동안 트럼프는 친구와 원수 모두를 공격하면서 세계정치를 뒤흔들어왔다. 그러나 그의 행위들에는 어떤 논리가 있는가, 아니면 그의 행위들은 완전히 비이성적인가? 많은 논평가들이 이 문제에 관하여 신중하게 생각해왔다. 까다로운 것은 대답이 두 가지 모두라는 것이다. 트럼프는 분명히 일관성있는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은 바보천치지만, 그는 강력한 계급적 본능을 가진 바보천치이다. 그는 미국이 거대한 물리적 힘을 비축하고 있으며, 자신의 쇠퇴를 중지시키기 위하여 뭔가 극단적인 것이 필요함을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여느 부동산 거물처럼, 그는 자신의 방법으로 어떠한 이점이라도 확보하기 위하여 협박을 하고 괴롭히고 있다. 그는 공격을 하고는 반응을 관찰한다. 만약 그가 너무 욕심을 부렸다면, 그는 토해낸다. 만약 그가 약점을 발견하면, 더 공격적으로 나온다. 이런 접근은 혼동스럽지만, 의존적인 국가들인 글로벌 사우스는 물론 미국의 동맹들로부터 양보들을 쥐어짜내는 것에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접근이 러시아와 중국에 공세를 취하는 것에 있어서는 쓸모가 없다는 것이 증명되어왔는데, 양국 모두가 미국의 위협에 맞설 수 있는 물질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트럼프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모든 힘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국제경제를 재편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트럼프는 수십년 동안의 상대적인 경제적 쇠퇴를 되돌릴 수가 없다-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이것이 트럼프의 터무니없는 짓거리들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도 많은 것들이 그대로인 이유를 설명해준다. 근본적으로, 물질적 힘들, 즉 경제, 그리고 전쟁의 결과가 역사의 주요한 운전자들이다. 핵전쟁 말고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이기는 것을 되돌릴 수 있는 것이 트럼프에게는 없다. 현재 트럼프는 관세를 가지고 중국경제를 질식시킬 수 있는 입장에 있지도 않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한 때, “국가지도자는 스스로는 아무것도 창조할 수 없다. 그는 사건들을 통하여 들려주는 신의 발걸음들을 들을 때까지 기다리고 들어야만 한다. 그리고 나서, 다가가서 신의 옷자락 끝을 움켜잡아야만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기다리는 시간을 결코 낭비하지 않으며, 그가 잡을 수 있는 어떤 지푸라기라도 움켜잡는다. 그러나 거대한 충격들이 임박해 있으며, 역사가 요동치면서 앞으로 나아가듯이, 트럼프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라는 배의 키를 잡고 있을 것이다. 요컨대, 그가 대표하는 정치 사조, 즉 쇠퇴하는 제국주의 지배계급의 공격적인 우익 포퓰리즘이 필시 세계질서 재편에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중국은 인계받지 않고 있다

중국은 어떤가? 중국은 국제체제에 닥쳐오고 있는 충격들 속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 않을 것인가? 중국, 그리고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역할은 세계정치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잘못 이해되고 있는 요소들 중의 하나이다. 대부분이 미국을 대체하려는 의도를 가진 부상하는 초강대국으로 중국을 바라본다. 일부는 이것이 진전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다른 이들은 그러한 전망에 몸서리친다. 양쪽 모두가 근본적으로 틀렸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중국의 부상은 경이적인 것이었고, 중국이 일정 영역들에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한다는 것이 사실인 한편, 중국공산당(CPC)는 미국 제국주의 체제와의 대립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렇기보다는, 중국은 자신이 이 적대적인 체제 내부에서 점진적 발전을 계속할 수 있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

공격적으로 부상하는 중국이라는 서술과는 뭔가 맞지 않다는 것을 눈치채기 위해서 중국 국가에 대한 완전한 분석이 필요하지는 않다 (스파르타시스트 69호, “중국의 계급적 성격”, 2024년 8월). 만약 중국이 세계지배라는 권좌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젊고 역동적인 존재라면, 왜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을 협박하고 공격하고 있는 것인가? 왜 중국은 미국에 맞서기 위한 동맹을 건설해오지 않았는가? 중국은 왜 제국주의의 공격을 물리치기 위하여 대규모 현대무기체계들을 이란, 베네수엘라, 그리고 팔레스타인에 공급하지 않는가? 아니다. 이것들 중 어느 하나라도 하기는커녕 중국공산당은 윈윈 협력과 다자질서의 보존에 대해서 계속해서 웅얼거린다. 반면 이것들의 주요 보증인이었던 미국은 이것들을 파쇄기로 파쇄하고 있다.

중국을 방어하고 브릭스를 지지하는 자들은 종종 중국이 미국에 직접적으로 도전하지 않을 만큼 현명하다고 주장한다. 중국이 천천히 그렇지만 확실하게 새로운, 다극 경제질서의 기초를 건설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관점은 두 가지 점에서 틀렸다. 첫째, 이 주장은 반자본주의 혁명에 의하여 수립된 중국의 사회적 정권과 세계 자본주의 경제 사이에 근본적으로 적대적인 관계가 있음을 부정한다. 결국에는, 국내에서 그리고 국제적으로 자본주의적 경제관계들은 중국공산당의 “중국적 특색들을 가진 사회주의”를 지탱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침식하고 파괴할 것이다. 두 번째 실수는 미국이 중국의 부상을 보장해주면서 그냥 스스로의 무덤을 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관점은 쇠퇴하는 미국제국이 제기하는 위험을 축소한다. 누군가에 의하여 저지되지 않는다면, 미국은 전례가 없는 정도로 빈곤, 혼란, 그리고 전쟁을 퍼뜨릴 것이다. 중국은 이것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다. 그 자신의 발전, 그리고 인류의 발전은 미국제국이 하루라도 빨리 끝장나는 것을 필요로 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객관적으로 세계정세를 바라본다면, 중국이 보수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충격들과 충돌들을 경계하는 반면, 미국은 교란과 혼란의 주요한 요인이다. 이것은 부상하는 제국주의 열강이 하는 행동이 아니며, 소련과 같은 관료적으로 지배당하는 노동자국가가 행동하던 방식이다. 다가오는 격동의 세계정치의 시대에서 중국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자신의 보수적인 정치적 성격 때문에, 중국공산당은 사건들을 만들어내기 보다는 그것들에 반응하면서 트럼프에 비해 부차적인 역할을 계속할 것이다.

Z세대 혁명들?

좌익의 대부분에게는, 부상하는 반동의 물결에 똑같이 부상하는 인민들의 투쟁의 물결이 필적하고 있다. RCI는 “붉은 9월”과 “세계정세에서의 극적인 전환”에 관하여 말한다. 이 낙관적 분석은 Z세대 혁명들로 알려져 있는 반식민지 세계에서의 봉기들의 물결에 크게 기초하고 있다. 지난 수개월 동안, 네팔, 인도네시아, 마다가스카르, 모로코, 페루, 그리고 탄자니아와 같은 나라들은 모두 불만의 폭발들을 목격해왔다.

각각의 운동이 구별되는 그 자신의 정치적 동역학을 가지고 있어왔다. 그러나 계층 사다리가 부러진, 발전이 요원한 세계 속에 있는 청년들의 악화되는 조건들이 모든 운동들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어왔다. 이전에, 미국 질서는 이주와 NGO 자금을 압력조절용 밸브로 사용하는 동시에, 경제적 그리고 민주주의적 진보에 대한 환상을 조장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났다. 실행 가능한 미래에 대한 전망을 상실한 채, 사회적 폭발이 유일한 배출구가 되어왔다.

(인도네시아, 모로코, 페루 등) 최근의 봉기들은 엄청난 탄압에 직면해왔고, 마다가스카르의 경우에는 군대가 이끄는 새로운 정권으로 귀결되었다. 현재로서는, 왼쪽으로의 급선회가 이들 나라들에서 발생해 온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국제정치의 규모에서는, Z세대 혁명들은 제국주의적 반동으로 향하는 전반적 움직임을 멈추게 하지는 않아 온 부차적 추세로 남아 있다.

이들 인민의 폭발들이 그들의 에너지들을 진보적 방향으로 이끌 수 있었던 정치적 표현들을 발견하지 못해왔다는 것이 이것의 주요한 원인이다. 압도적으로, 좌익은 대중적 봉기들에 지도부를 제공하지 못해 왔다. 네팔에서는, 봉기가 이 나라를 통치해왔던 다양한 공산당들에 반대하는 것으로 사실상 향했다. 스리랑카에서는, 2022년의 대중봉기가 공산주의자들이 주도하는 연합을 권력으로 이끌었지만, 이 권력은 IMF에 굴복함으로써 대중들의 열망을 이미 배신해왔다.

이 봉기들에서의 지도부의 부재에 의하여 야기된 문제들은 조직화된 노동계급이 주요한 역할을 하지 않아왔다는 사실로 인해 악화된다. 실제로,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사회적 폭발들에도 불구하고,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절대 다수인 글로벌 사우스의 산업노동계급은 아직은 증가된 전투성의 징후들을 보여주지 않아왔다. 이것은 적지 않은 부분에서 산업 노동자들의 악화되는 경제적 전망들로 기인한다. 중국, 멕시코, 혹은 인도네시아와 같은 나라들에 있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의 위력을 보여주었다면, 이것이 투쟁에 훨씬 더 많은 사회적 비중을 가져왔을 것이고, 세계정치를 극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관찰들은 세계경제의 외곽에 있는 나라들을 포함하여, 글로벌 사우스의 혁명적 잠재력을 폄하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세계가 쇠퇴하는 미국제국이라는 혼동으로 더욱 깊이 빠져들수록, 이 나라들에 대한 압력은 커질 것이다: 다가오는 시대의 가장 중요한 혁명적 흐름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을 발전시키면서. 최근의 봉기들은 주로 즉자적이고 정치적으로 무정형이었다. 그러나 탄압과 개량주의적 해법들이 인민의 분노를 통제하는데 실패하면서, 가장 선진적인 인자들이 교훈들을 도출할 것이다.

글로벌 사우스의 혁명적 투사들이 과거의 실패들로부터 배우고 통일된 반제국주의 전략으로 뭉치는 것을 도움으로써 이 과정을 가속화시키는 것이 맑스주의자들의 임무이다 (스파르타시스트 68호 영어판, “영구혁명을 방어하기 위하여”, 2023년 9월). 이것은 진지하고, 장기적이며 체계적인 활동을 요구한다. 불행하게도, 혁명적 좌익에서의 흔해빠진 활동은 인민의 봉기를 응원하고, 모종의 독립적인 노동자위원회를 요구하며, 그리고 나서는 기회가 후퇴하자마자 좀 더 매력적인 것들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러한 방책들은 환상과 냉소주의를 퍼뜨리며, 이것들은 글로벌 사우스에서의 혁명적 투쟁을 조직하기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서구에서의 우익 포퓰리즘

서구는 어떠한가? 파시스트 독재나 혹은 혁명이 목전에 있는가? 적어도 당장은 둘 다 아니다. 다시 한번, 우리는 비이성적인 인상주의를 제쳐두고 실제 정치적 동향들을 바라봐야만 한다. 서구 전역에서, 우리는 전투적인 포퓰리스트 우익의 타격으로 정치적 중도세력이 붕괴하고 있는 것을 목도한다. 이 운동이 일반적으로 지난 수십년 동안의 자유주의적 기존질서에 굳건하게 반대하는 유일한 정치세력이라는 사실로부터 이 운동의 강력함이 나온다. 참으로, 종종 그들의 수사가 급진적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주요한 좌익세력들은 우익에 맞서 중도를 지지하는 것에 완전히 전념한다. 이것은 우익을 멈추게 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붕괴하는 자유민주주의 체계와 함께 좌익이 몰락하도록 준비한다.

나라마다 이 과정은 다른 국면에 있다. 미국과 이탈리아에서는, 우익 포퓰리즘이 이미 권력을 장악했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그리고 국내적으로 그러한 세력들은 여전히 그들의 행동들을 방해하지만 진정한 도전은 제공하지 않고 있는 과거 시대의 잔재들로부터의 정치적 반대에 직면해 있다. 영국, 프랑스, 그리고 독일에서는, 스타머, 마크롱, 그리고 메르츠의 중도주의 정부들이 우익과 좌익 모두에 멸시당하는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더욱 탄압적이고 관료적인 수단들을 사용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들의 모든 술책은 대중들을 더욱 멀리 밀어내고 반동의 부상에 힘을 실어주기만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트럼프의 바람에 저항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아일랜드와 같은 나라들이 있다. 캐나다에서는, 미국의 공격적인 경제방책들이 중도자유주의를 일시적으로 강화시켜왔다. 아일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이들 섬 나라들이 세계정치의 거대한 흐름들로부터 안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 문제는 근본적으로 이 나라들이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미국에 의존적이며, 그들의 저항하는 듯한 말들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엘리트들이 굴복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은 괜찮을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으로 인하여 방심하지 말아야만 한다. 이 나라들에서도 또한 자유주의 중도세력의 붕괴는 시간문제일 뿐이다.

… 그리고 좌익의 부상?

그러나 좌익은 어떠한가? 위에서 언급된 많은 나라들은 또한 좌익의 일시적 부상을 목격해왔다: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고 그리스에서의 최근의 파업들뿐만 아니라 뉴욕시장 선거에서 조란 맘다니의 승리, 캐서린 코놀리의 아일랜드 대통령 당선, 영국에서 녹색당과 당신의 당의 부상. 많은 이들에게, 이 전개들이 좌익의 부상이 적어도 우익의 부상과 같은 정도임을 확인해준다. 불행하게도, 이 관점은 틀렸으며 정치적 동역학에 대한 잘못된 독해에 기초하고 있다.

좌익으로의 선회가 있어왔던 한에서, 이것은 압도적으로 자유주의적 중간계급들과 학생계층 사이에서였다. 이것의 추동력은 부상하는 우익과 자신들이 옹호한다고 주장했던 가치를 배신하고 있는 전통적 자유주의자들에 대한 격분이었다. 이것은 노동계급 의식과 전투성의 유기적 성장에 기초하고 있지 않다. 주로, 노동계급은 좌익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익 포퓰리스트 정당들의 기초의 중요한 부분을 구성한다. 기타 부위들은 사기가 저하되어 있는데, 이것이 또한 반동세력들에게 득이 된다. 지배계급 역시 우익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좌익 진보세력들에게는 그들을 지지하는 결정적인 사회세력이 없다.

게다가, 대부분의 좌익은 사회주의를 향하여 노동계급을 이끌기 위하여 열망하는 세력이 아니라 자유주의적 제국주의의 가장 일관성 있고 전투적인 방어자들로 자처한다. 캐서린 코널리, 영국의 녹색당, 독일의 좌파당이 전형적이다. 급진적 노동계급 강령을 채택할 잠재력을 가진 곧 탄생할 당신의 당에서조차, 이 당의 대부분의 지지자들과 지도자들이 여전히 전통적인 영국 자유주의로 매우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이 모든 경우들에서, 사회주의자들의 임무는 자유주의와의 정치적 결별노동계급과의 유대들을 건설한다는 분명한 지향을 위하여 투쟁하는 것이다.

트럼프가 백악관을 차지하고 있고, 민주당은 혼란에 빠져있는 미국에서는 동역학이 약간 다르다. 마가(MAGA)와 민주당 기득권세력 모두에 대한 맘다니의 승리는 다른 나라들에서의 좌익운동들과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두 가지 주요한 차이점들이 있다. 맘다니가 미국 제국주의의 전통적 양당체제 내부에서 등장했다는 것이 첫 번째이다. 민주당의 다수가 맘다니에 반대하지만, 그는 지배계급의 어떠한 허용 한계선도 넘지 않는다. 이미 바락 오바마 같은 인사들은 맘다니를 기득권세력의 품속으로 끌어들이기를 원하면서 그에게 접근해왔다. 둘째, 맘다니의 선거운동이 자유주의적 구태를 방어하는 것에 실제로 기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거운동은 최소의 경제적 요구를 제기했고, 이민, 흑인억압, 그리고 성전환 문제와 같은 사회적 주제들은 대체적으로 회피했다. 그리하여, 유럽의 정치 떨거지들과는 달리, 맘다니는 민주당의 미래에 대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보다 더한 경제적 개입주의, 덜한 사회적 자유주의.

맘다니가 뉴욕 노동계급 안에서의 전투적 정서의 물결에 힘입어 부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핵심적이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공포에 떨고 사기저하되어 있고, 일부는 여전히 트럼프를 지지한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삶의 모든 측면들이 악화되면서 매일 매일의 생존을 여전히 압도적으로 걱정하고 있다. 이것은 이주노동자들과 흑인노동자들 사이에서 특히 사실이다. 그리고 중간계급들과 청년학생들 사이의 정서들이 중요하지만, 맑스주의자들은 노동계급의 지지가 없다면 급진적 좌익정치를 위한 어떠한 실행 가능한 기초가 있을 수 없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노동계급의 정서를 이해하고 그에 따라서 개입들을 조정하는 것이 현 시기에 공산주의 활동의 핵심이어야만 한다.

많은 이들이 위에서 개괄된 것들에 대한 반론으로서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의 최근의 파업들을 지적할 것임이 분명하다. 두 나라 모두가 파업행동의 중대한 나날들을 경험해왔음은 진실이다 – 이탈리아의 경우, 십수년 동안 최대였다. 하지만, 이것들은 일반적인 경향에 대한 예외들이다. 근본적으로,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의 추세들은 나머지 유럽 나라들과 다르지 않다. 중도세력이 붕괴하고 있고, 우익이 권력을 잡고 있거나 부상하고 있으며, 다수의 노동계급이 우익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자유주의적 중간계급들은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

프랑스에서는, “모든 것을 차단”하라는 멜량숑을 지지하는 도시의 진보주의자의 급진적 선동이 전통적인 하루 파업과 행진에 추가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좌익은 불리한 상황이고, 반동적인 국민연합은 권력에 어느 때보다 가까이 있으며, 노동자들은 2023년 연급개혁에 맞선 투쟁의 패배로 계속해서 휘청거리고 있다. 이 정세에서, 총파업을 위한 초좌익적 선동은 현실을 모르는 좌익에 반대하면서 안정의 책임있는 대리인들로서 자처할 수 있는 우익과 노동조합 관료세력을 강화시킬 뿐이다.

이탈리아의 경우, 팔레스타인을 방어하기 위한 총파업은 힘을 보여주는 시위였다. 그러나 많은 노동자들은 이 똑같은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사업주들과 멜로니 정부의 공격들에 맞서는 어떠한 진지한 투쟁도 조직하지 않아왔다는 사실에 분개한다. 게다가, 10월 파업들이 이탈리아의 정치적 동역학을 급진적으로 바꿔온 것으로는 보이지 않으며, 멜로니는 권력에 굳건히 남아있다. 불행하게도, 프랑스와 이탈리아 모두에서, 최근의 투쟁으로의 조직화들은 이 국가들의 강력한 생디칼리스트 경향들과 일치했고, 포퓰리스트 우익에 맞서는 노동계급의 자각의 첫번째 신호들이라기 보다는 구질서의 최후의 발악들처럼 보인다.

파시즘은 목전에 와 있지 않다

우리의 분석은 파시즘이 임박해 있고 불가피함을 의미하는가? 아니다. 비록 편협한 우익 포퓰리스트 세력들이 부상하고 있지만, 이것은 노동자운동과 피억압 인민들을 분쇄하기 위한 준군사 조직들의 동원으로 이루어지는 파시즘과 같은 것은 아니다. 반동적 깡패들로부터의 인종주의적 폭력이 증가하고 있지만, 이것은 20세기의 그것처럼 조직화된 대중운동이 아니라 원자화된 사건들로 주로 이루어진다. 미국에서의 ICE 급습과 같은 커지는 국가탄압과 권위주의로 말할 것 같으면, 그것들이 위험한 추세를 가리키지만, 아직은 파시스트 정권에 딸려 있는 모든 형태의 정치적 반대파에 대한 물리적 파괴까지는 아니다.

파시스트 폭력이 프롤레타리아트의 다수를 구성하는 조직화된 노동자운동과 피억압 그룹 및 소수민족들을 표적으로 삼기 때문에, 이 폭력은 노동계급으로부터의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파시즘의 부상에는 어떠한 필연적인 것도 없다. 우리 분석의 요점은 패배주의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파시즘과 반동을 멈추기 위해서는 우리가 존재할 것이라고 희망하는 것들이 아니라 현실의 조건들로부터 진행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여기서 우리는 정말로 필연적인 것은 자유주의 중도세력의 붕괴라는 것을 주장해야만 한다. 아무리 많은 선거 술책들이나 관료적 탄압도 구질서를 구원하지 못할 것이다. 파시즘의 위험에 대한 제정신이 아닌 울부짖음은 그저 기존 정치의 주변으로 좌익을 결집시키려는 필사적 시도들일 뿐이다. 물에 빠진 사람처럼, 자유주의 중도세력은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기 위한 필사적 시도를 하면서 좌익을 움켜쥘 것이다. 노동자운동은 스스로가 자유주의 중도세력과 함께 끌려내려 가도록 하지 말고, 자유주의의 얼굴을 걷어차는 것으로 응수를 해야만 한다.

공산주의자들에게 유일한 실제 문제는 자유주의의 붕괴가 얼마나 빨리 새로운 혁명적 노동계급 기풍의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을 지이다. 이러한 발전의 속도를 높이는 것이 우리 노력들의 초점이어야만 한다. 이것을 위해 좌익들은 더 이상 자유주의의 부속물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단순히 허공에 혁명적 언사를 장황하게 내 지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정치적 상황전개들에 개입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오직 그럴 때에만, 맑스주의자들은 노동계급 속에서 스스로의 독립적인 영향력 재건을 시작하고, 우익의 장악력을 침식할 수 있다.

2부: 임박한 충격들

우리는 세계정치에서의 주요한 정치적 추세들에 관하여 일부 설명해왔고, 이제 우리는 미래로 우리의 관심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현재의 정세는 상당이 많은 부분 칼의 날과 같다. 다수의 부글부글 끓고 있는 화산들이 어느 때라도 폭발하여 국제질서를 바꿀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서 올바른 방침은 이 다양한 긴장의 지점들에 대한, 그것들이 어떻게 발전해 나갈 것 같은지, 그리고 그것들이 가질 수 있는 정치적 충격들에 관한 분석을 필요로 한다.

중국: 잠자는 거인

지정학적 긴장들의 가장 커다란 장기적 원천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분쟁이다. 하지만, 이 긴장들이 정말이지 아직은 터질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관세전쟁은 중국의 지위가 얼마나 강해져 왔는지를 드러내 왔을 뿐이다 (우리의 최근 분석에서 과소평가했던 사실). 중국은 국제 산업생산에서 우위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미국의 군산복합체들에게 치명적인 희토류에 대한 통제권을 보유하고 있다. 이 점이 미국으로 하여금 대중국 경제전쟁에서 부분적 후퇴를 강제했고, 미국이 재래식 전쟁 또한 도발할 처지가 아님을 분명히 해 왔다. 미국은 그러한 치명적인 경제적 목지점들에 대한 중국의 통제를 우회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고, 필시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은 수년이 걸릴 것이다.

만약 중국이 미국을 패배시키고자 할 의도라면, 중국이 자신의 이점을 활용하고 미군의 전체 공급망을 마비시키는 것이 상식적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보아왔듯이, 중국공산당은 그러한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는 보수적 관료집단이다. 대신, 중국공산당은 일년짜리 무역협상에 동의함으로써 미국과 자신의 관계를 안정화하려는 것을 택해왔다. 이 합의가 얼마나 오래가는지는 우리가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합의가 존재하는 동안, 이 합의는 미국이 자신의 공급망에서 뒤쳐진 부분을 만회할 시간을 미국에 부여하며, 보다 약한 나라들을 자유롭게 공격하도록 해 주는데, 이것은 당연히 미래에 중국에게 해를 가하는 것으로 되돌아 올 상황전개들이다(스파르타시스트 70호, “중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질 것이다”, 2025년 5월).

조준경 위의 십자선에 놓여진 베네수엘라

가장 즉각적인 위협의 대상이 엄청난 군사력증강의 초점이 되어 온 베네수엘라이다. 미국과 베네수엘라 사이의 전면전은 라틴아메리카의 모든 것을 심대하게 뒤흔들 것이다. 만약 미국이 대통령 마두로를 타도하는데 성공한다면, 이것은 과거 수십년 동안의 민주주의적 성취를 되돌려 친미 우익 군사독재의 나날들로 되돌아가는, 이 대륙에서의 주요한 정치적 재편으로 귀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마두로의 몰락은 또한 쿠바 노동자국가의 목을 조이는 올가미를 훨씬 더 강하게 조일 것이다.

제한적이건 혹은 전면적이건,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적 공격 가능성이 충분하기는 하지만, 아마도 미국이 이것을 피하려고 하는 이유들이 있다. 우선, 베네수엘라와의 전쟁이 미국 자체에서 매우 인기가 없을 것이다. 심각한 지상침략에 대해서는 분명히 거대한 반대가 있을 것이다. 전쟁이 성공적이라는 보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전쟁은 또 다른 수렁으로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군사공격은 쉽게 역효과를 내어 베네수엘라 인민들이 정권의 뒤로 결집하게 만드는 한편으로, 또한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미국에 대한 엄청나게 큰 반대를 부채질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국무성의 특정인들은 미국 군사력을 이용한 간단한 위협이 마두로 정권의 붕괴를 야기하기에 충분하기를 희망한다. 지난 수십년 동안, 휴고 차베스에 의하여 수립되었고 지금은 마두로가 이끄는 정권은 베네수엘라 대중들의 혁명적 에너지를 억누르고 약화시켜왔다. 이것과 미국의 경제봉쇄들의 잔혹한 결과들이 정권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꾸준히 약화시켜왔고, 정권이 점점 더 불안정해지고 탄압적이 되도록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두로 정권이 저항없이 굴종한다면, 이것이 노동계급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이것은 미국 제국주의에게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베네수엘라 구사노스[반혁명세력]에게 엄청난 승리를 가져다 줄 것이며, 라틴아메리카 전역의 대중들을 극심하게 사기저하시킬 것이다.

미국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불행하게도, 이 경우에 있어서는, 트럼프가 모든 주도권을 가지고 있으며, 그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즉각적인 제약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일단 지니가 호리병 밖으로 나오고, 군사적 충돌이 벌어지면, 그 결과들은 예측이 불가할 수도 있고, 그 결과는 트럼프가 명백하게 선호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떤 일이 벌어지건 간에, 혁명가들은 베네수엘라와 미국이 표적으로 하는 다른 어떤 나라라도 그들을 방어하기 위하여 굳건하게 서 있어야만 한다.

변곡점에 있는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한, 우리는 완전히 다른 상황에 처해 있다. 여기서 주도권은 러시아의 손아귀에 굳건하게 있으며, 푸틴은 자신이 가진 패를 최대한까지 활용하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다. 트럼프의 외교적 휘젓기는 결국 한계치에 이르렀다. 러시아가 이기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벗어날 허세의 여지가 없었다. 최근의 협상들은 이 분쟁이 외교가 아니라 군사력에 의하여 결정될 것임을 확인해왔을 뿐이다.

러시아의 성공들의 속도가 지난 2년 동안 점점 더 빨라졌고, 이제 우리는 분쟁의 주요한 변곡점에 와 있다. 포크로프스크 함락은 주요 물류허브의 상실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전쟁의 중심인 돈바스에서 우크라이나의 입지 전체의 붕괴를 향한 길을 열게 될 수도 있다. 돈바스 함락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핵심적인 경제동맥인 드니프르강으로 막힘없이 나아갈 길을 열어주게 될 것이다. 겨울이 시작되는 것과 우크라이나의 저항이 이것을 몇 달 더 지연시킬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결과는 뻔하며, 우크라이나 전선들이 러시아의 무지비한 공세에 붕괴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우크라이나로서는, 현재의 상황전개들이 파국적이며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인력과 장비의 손실들을 야기하고 있다. 이것들은 또한 전쟁에 쏟는 노력을 더욱 침식하면서, 키이우에서의 첨예한 정치적 위기의 장을 조성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패배의 결과들은 단지 이 나라 자체에서만 감지될 뿐만 아니라 유럽 전반에서 정치적 지진을 일으킬 것이다. 독일, 프랑스, 영국 정부들이 우크라이나에 엄청난 양의 군사적, 경제적, 정치적 자산들을 투여해왔고, 우크라이나의 붕괴는 정치적 기득권세력을 그 핵심으로까지 뒤흔들 것이다. 그 충격이 미국에서도 또한 감지될 것이지만, 트럼프는 그의 유럽의 상대방들보다는 전체 사태로부터 약간 더 거리를 둠으로써 혜택을 누릴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군사적 붕괴 이후에라야, 외교가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문제는 미국과 러시아가 친미 블럭과 러시아 사이의 균열의 선을 적어도 동결한다는 해결책에 합의할 수 있을 것인지, 혹은 충돌이 계속될지 여부일 것이다. 첫번째 시나리오에서는, 우리는 러시아-미국 조약에 기초하여 유럽에서 강요되는 반동적 질서를 보게 될 수 도 있다. 그러한 결과는 현재 유럽을 통제하려는 야심은 물론 경제적 비중도 가지고 있지 않은 러시아에게 이상적일 것이다. 합의에 도달하는데 있어서 주요한 장애물은 자존심을 꾹 눌러 참아 온 미국이 패배와 동유럽에서의 자신의 영향력 축소를 수용할지 여부이다. 미국은 또한 러시아와의 어떠한 상당한 정도의 합의에 대해서도 우크라이나와 유럽연합으로부터의 강한 반대에 직면하고 있다.

만약 군사적 적대가 계속된다면, 이것은 유럽을 극도로 불안정하게 내버려 둘 것이고 궁극적으로 러시아와 나토 사이의 군사적 충돌로 귀결될 수도 있으며, 그 결과는 대재앙일 수도 있다. 불행하게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노동자운동의 민족주의에 대한 비겁한 굴종 때문에 (국제 사회주의운동으로부터의 어떠한 도움도 없는 가운데), 충돌에 대한 노동계급적 해결의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이 상황은 첨예한 위기에 의한 타격으로 급격하게 변할 수 있지만, 즉각적인 미래는 암울해 보인다. 어느 때 보다, 공산주의자들은 이 지역에서 공동의 반제국주의 강령을 통하여 프롤레타리아트를 단결시키면서 혁명적 세력을 건설하기 위하여 활동해야만 한다 (노동자전위 1184호, “우크라이나 전쟁: 동지들은 지금 어느 편에 서는가?”, 2025년 4월).

이스라엘은 다음 번 대학살을 준비하고 있다

10월 7일 이래,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팔레스타인 인민들에 대한 자신의 대량학살 테러 공세를 강화해왔다. 저항의 축에서의 분열들과 정치적 동요들 때문에, 이스라엘은 자신이 선택한 때에 축의 구성부분들과 개별적으로 교전을 벌일 수 있었다. 이것이 과도하게 여러 전선에 걸친 전쟁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2년 동안 전쟁에 쏟는 노력을 유지하도록 해 주었다. 이제 미국이 중재한 휴전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잠시 멈추도록 하지만, 이스라엘은 의심의 여지없이 자신의 다음 번 대학살의 파도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저항의 축의 결과를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하마스는 심대한 타격을 받아왔지만 견뎌왔고, 헤즈볼라는 종이호랑이 처럼 행동했고, 회복하려고 시도하고 있으며, 아사드의 붕괴는 전략적 패배로 귀결되었으며, 후티스는 그들의 명성을 높이면서 등장했다. 동맹의 우두머리 격인 이란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스라엘과 미국과의 12일 전쟁 동안 스스로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역에서 이란의 지위는 약화되어 왔으며, 이란은 점증하는 내부 긴장들에 직면하고 있다.

저항의 축이 보여주는 용감한 얼굴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의심의 여지없이 물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그만한 가치가 있었을까?” 지난 2년 동안의 결과에 뒤이어, 패배주의적 결론들을 도출하고, 미국, 이스라엘, 그리고 아랍에미리트에 양보들을 하라는 압력이 있다. 그러한 태도들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걸고 반대해야만 한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그들이 멈출 수밖에 없을 때까지 이 지역에서 자신들의 대량학살을 계속할 것이다. 저항은 선택이 아니다! 최근의 분쟁이 이 사실을 확인해왔고, 협조와 동요가 어떻게 이스라엘의 더 심한 학살로 귀결될 뿐임을 보여주었다. 팔레스타인 인민들의 대의는 옳은 것일 뿐만 아니라 서아시아의 전체 아랍인민들을 위한 자기보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며, 팔레스타인 인민들은 여전히 죽임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해야만 한다; 전쟁과 학살은 단지 강도만 약화되었을 뿐, 다시 폭발 할 것이다. 전쟁과 학살이 다시 폭발할 때, 우리는 올바른 정치적 그리고 군사적 교훈들이 도출될 것임을 명심해야만 한다 (스파르타시스트 호외 영어판, “팔레스타인: 협상을 박살내라!”, 2025년 10월 8일). 이런 일은 저절로 발생하지 않는다; 공산주의자들은 이 교훈들을 도출하는 것을 돕고, 아랍세계와 외부에 있는 반시온주의 투쟁의 전위인자들로 그것들을 가져가야만 한다.

위태로운 남아시아

남아시아는 커진 불안정으로 인하여 뒤흔들려왔다.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그리고 네팔 모두가 지난 수년 동안 인민들의 봉기를 목격해왔다. 카슈미르에서의 긴장들이 끓고 있다. 단지 몇 달 전, 파키스탄과 인도가 전쟁을 벌였고, 최근에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이 적대행위를 벌였다. 뉴델리와 이슬라마바드 양쪽 모두에서의 폭격들에 뒤이어 현재 긴장들이 다시 한번 고조되고 있다. 이 지역의 다양한 정부들이 지정학적 긴장들과 제국주의의 경제적 압력이 증가하고 있음을 느끼는 때에,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더 큰 충격들은 틀림없이 온다. 인도 아대륙의 인구와 경제적 비중을 고려할 때, 이 충격들은 틀림없이 세계정세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남아시아에서 고조되는 긴장들은 그 자체가 점점 긴박해지는 세계정세의 산물이다. 이 지역의 패권국이면서 가장 안정적인 나라인 인도 그 자신이 점점 더 쥐어짜지고 있다. 트럼프와 수상 모디 사이의 급속한 관계악화가 인도의 정치 엘리트들을 놀라게 하고 뒤흔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인도가 중국과의 화해를 추구하고 미국으로부터 거리를 둘 것이라고 예측해왔다. 이런 생각은 신빙성이 거의 없다. 인도의 자본가계급은 서구와 깊이 통합되어 있다. 그러한 유대들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훨씬 깊은 위기가 있어야 할 것이며, 특히나 중국과 인도가 역사적으로 극단적으로 적대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이 긴장의 조짐을 보일 때, 좌익은 자신이 한껏 열중하는 사소한 것들을 따지는 역사논쟁에 초연한 채, 제국주의와 자기 자신의 나라들을 팔아먹고 자기 인민들이 서로 싸우게 만드는 부패한 자본가들에 맞서는 단결된 투쟁을 조직하는 것을 향하여 스스로를 설정해야만 한다 (스파르타시스트 70호 영어판, “남아시아 화약고”, 2025년 5월).

결정적 요소: 국제경제

세계정치의 전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국제경제이다. 국제경제는 다른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뒷받침하며, 사태의 경로를 모양짓는 데 있어서 국제경제의 진화가 결정적일 것이다. 다음 번 주요한 경제위기가 언제 닥칠지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위기가 다가오고 있으며 그 위기는 대단히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국제경제는 2008년 위기로부터 결코 완전하게 회복되지 못했다. 현실경제의 전체적인 성장은 더뎌왔고,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생활수준들은 정체되어 왔거나 후퇴해왔다. 국제적 성장을 떠받치고 있는 주요한 요소들은 중국에서의 사회기반시설과 주택에 대한 거대한 투자, 서구 정부들의 자신들의 경제에 대한 통화적 그리고 금융적 부양책들, 그리고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산가격들에 있어서의 투기열풍이었다. 이 세가지 요소들 가운데, 세번째 것만이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투자비율을 완화해 왔고 주택거품은 터졌고, 이것이 시장을 불경기로 이끌고 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정권은 “새로운 생산력들”에 대한 거대한 투자를 단행해왔는데, 이것이 전기차와 태양전지판을 포함하는 많은 산업재화의 가격을 하락시키고 있다. 이 대규모 투자는 중국에서 디플레이션의 순환고리를 만들어왔고 세계의 다른 지역들에서 탈산업화를 향한 경향을 가속화시켜 왔다. 전지구적으로, 우리는 생산둔화와 산업재화의 과잉공급을 목격할 수 있다.

상황의 통화적 측면에서는, 대부분의 주요 경제들이 코비드 팬데믹에 뒤이어 올가가는 물가에 대한 대응으로 이자율을 올렸다. 이것은 2008년 이래 존재해 온 엄청나게 완화된 대출조건과의 결별을 의미했다. 그 결과는 대출 비용의 상승이고, 이것이 많은 정부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예산적자를 제한하기 위하여 애쓰게 만들고 있다. 이제 대부분의 제국주의 나라들이 역사상 최악의 채무부담을 지고 있고, 이것이 미래의 거대한 정치적 그리고 경제적 불안정을 야기할 조짐을 보인다. 이 문제들 모두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군비지출 압력에 의하여 악화되고 있다.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한 주식거품에 관하여 말하자면, 트럼프 재임 초기의 조정 이후에는 계속해서 확대되고 있다. 이것이 주식 보유자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높은 수준의 소비를 할 수 있도록 해왔다. 반면, 다른 모든 이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더욱 더 힘들게 싸우고 있다. 소위 인공지능 혁명으로 인한 기술주들에서의 대규모 주식가격 상승이 주된, 그리고 점점 더 유일한 주식시장 성장의 동력이 되어 왔다. 칩 설계 기업 엔비디아의 주식가치가 최근 5조 달러를 기록했는데, 이것은 이 기업이 독일경제의 전체 연간 생산과 같은 규모이다. 분명히 이것은 제정신이 아니다. 지금까지는, 거품이 인공지능 기업들의 가치상승을 활용해서 더 많은 인공지능 상품을 구매하게 함으로써 계속해서 성장해 올 수 있었고, 이것이 다시 기업가치 상승을 유발해왔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파국적 붕괴로 끝날 것이다. 이것이 정확하게 언제 벌어질지 예측할 수는 없다. 그러나 주식거품을 지탱하고 있는 요소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고, 이것이 하락하는 주식의 지속적인 증가에 의존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음악이 멈출 때, 우리는 세계경제의 진정한 상태와 열강들 사이의 경제적 힘의 실제 균형을 한눈에 파악하게 될 것이다. 우선, 주요한 충격이 아마도 노동계급의 전투성 상승으로 귀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미래와 생존에 대한 두려움의 태도들이 아마도 우세를 점할 것이고, 이것은 정부들에 대한 인기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정부들이 노동인민들을 더욱 쥐어짜도록 할 것이다. 이 다가오고 있는 경제적 난관이 우리가 노동계급을 향하여 방어적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하는 주요한 이유이다 (노동자전위 1186호, “노동조합 투사들이 해야 할 것”, 2025년 8월).

하지만, 노동계급이 휘둘림을 당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며, 결국 노동계급은 생존을 위해서는 집단적 투쟁이 필수적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특히, 경제가 다시 상승하는 국면에서, 우리는 대규모 노동계급 쟁들의 상승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반동기의 혁명가들

공산주의자들로서, 우리는 주체적 요소, 즉 자신들의 행동을 통하여 역사를 모양짓기 위한 개인들과 당들의 능력의 중요성을 인정한다. 1917년 10월 혁명과 같은 특정 시점에서는, 혁명적 전위의 의식적 실천이 결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개인들의 역할은 그 개인들이 스스로를 객관적인 역사적 과정들의 전개 속에 위치시키는 정도만큼만 결정적이다. 이것을 항해의 영역에 빗댄다면, 만약 보트가 바람을 타고 있다면, 돛을 어떻게 펼쳐야 하는지 아는 것이 결정적이지만, 바람이 없다면 항해도 없다.

그렇다면, 계급투쟁의 바람이 우리의 방향에 맞게 불지 않는 시기에 혁명가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분명히, 이 상황은 우리가 대중들에게 미칠 수 있는 직접적인 역량을 심대하게 제한한다. 우리는 우리의 주체적 노력만을 통해서 대중들을 투쟁으로 밀어붙일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의미없는 존재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정반대이다. 힘든 객관적 정세하에서는, 우리가 우리의 에너지들을 어디에 쏟을 것인지 결정함에 있어서 신중하고 의식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미래의 정치적 전개들을 예측하고, 성공적으로 그 정치적 전개들에 개입할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위치시켜야만 한다 (스파르타시스트 70호 영어판, “맑스주의 좌익의 위기와 ICL의 임무들”, 2025년 5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심의 여지없이 우리의 분석이 너무나도 비관적이거나 심지어 패배주의적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러한 비판들에 대하여 우리는 우리의 어깨를 으쓱할 수 있을 뿐이다. 점증하는 반동에 직면하여 그들의 눈먼 낙관주의는 맑시즘에 대한 조잡한 희화화이다. 그렇게 하기 보다는 우리는 트로츠키가 서술한 바와 같이 볼세비키 당의 경험에서 배운다:

“이 거대한 사태들 속에서,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역사의 리듬, 즉 계급투쟁의 변증법을 배웠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또한 어떻게 그들의 주체적 계획들과 강령들을 객관적 리듬에 종속시킬지에 관하여 배운 듯 하며, 어느 정도까지는 성공적으로 배운 듯 하다. 그들은 역사의 법칙들이 그들의 개별적 기호들에 의존하지 않으며 그들 자신의 도덕적 기준들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하여 절망하지 말아야 함을 배웠다. 그들은 그들의 개별적 기호들을 역사의 법칙에 종속시켜야 함을 배웠다. 가장 강력한 적들이 역사적 발전의 필요와 모순된다 해도, 그것 때문에 놀라지 않아야 함을 그들은 배웠다. 그들은 새로운 역사의 홍수가 자신들을 다른 쪽 해안으로 데려다 줄 것임을 확신하면서 어떻게 흐름을 거슬러 헤엄쳐야 하는지를 안다. 모두가 그 해안에 이르지 못할 것이며, 다수가 익사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는 눈과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이 운동에 참여하는 것, 오직 그것만이 사고하는 존재에게 가장 높은 도덕적 만족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들의 도덕들과 우리의 도덕들 (19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