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iclfi.org/pubs/icl-ko/1/class-nature
중국은 무엇인가? 지배계급들로부터 극좌까지, 이 간단한 것처럼 보이는 문제에 대해서 의견이 갈린다. 미국의 자본가인 래이 달리오로 말할 것 같으면, 그 정권은 국가 자본주의의 하나인데, “몇 년 내에 자본주의와 자본시장들의 발전이 미국에서보다 중국에서 더 지지받을 것이다.” 중국공산당 총서기인 시진핑은 그러한 관점들을 직접적으로 논박한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길을 ‘사회적 자본주의’로, 다른 사람들은 ‘국가 자본주의’로, 또 다른 사람들은 ‘테크노크라시 자본주의’라고 불러왔다. 이것들은 모두 완전히 틀렸다. 우리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가 사회주의라고 답하는데, 이렇게 답함으로써, 이것은 개혁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회주의적 길 – 우리의 길, 우리의 이론, 우리의 체제 – 를 고수함을 의미한다.”
“중국 특색들의 사회주의 건설에 관하여” (2013년 1월 5일)
두 관점 모두가 서로 구분되는 이해관계를 반영한다: 달리오는 외국 자본투자자의 이해, 그리고 시진핑은 중국공산당 정권의 이해관계. 그렇지만, 노동자운동은 어찌되는가? 국제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로부터 출발하면서는, 사람들은 어떻게 중국의 성격을 이해해야 하는가?
이것이 오늘날 좌익에게 가장 중요하고 갈라져있는 문제들 중의 하나이다. 중국공산당의 범죄들에 눈을 감고는, 중국을 본받아야 할 사회주의 모델로 여기는 일부의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국제 맑스주의 운동에서 소수 관점으로 남아있다. 대부분의 조직들이 중국은 자본주의 그리고/혹은 제국주의 열강이라고 주장한다. 트로츠키주의자임을 주장하는 정당들 중에서, 국제사회주의대안(ISA), 혁명적 공산주의 인터내셔널(RCI – 구 IMT), 트로츠키주의 분파, 그리고 더 많은 조직들이 이 관점을 고수한다. 전통적인 스탈린주의자들인 그리스 KKE와 대부분의 중국 외부의 모택동주의자들, 예를 들면 독일의 MLPD와 필리핀의 시손 추종자들이 같은 입장이다.
이 문서가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 이 경향이다. 중국이 자본주의이고 제국주의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중국공산당에 대한 실행 가능한 정치적 대안을 제공하기는커녕, 단순히 미국과 미국의 동맹들을 달래고 있음을 우리는 보여줄 것이다. 동원된 주장들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그들은 국가와 제국주의에 관한 기본적인 맑스주의적 원칙들을 거부한다. 시작을 위하여, 우리는 중국은 왜 제국주의가 아닌지를 설명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중대한 자본주의적 침투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기형화된 노동자국가의 기본적인 특색을 간직하고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전개될 근본적인 주장은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를 밀고 나가는 것은 미국에 의하여 지배되는 세계질서에 대한 반대와 함께 시작되어야만 한다. 이것은 남아 있는 1949년 중국혁명의 성취들에 대한 방어를 필요로 하지만, 또한 중국을 재앙으로 이끌고 있는 전략과 정책들을 가진 중국공산당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에 반대하는 정치혁명을 위한 투쟁을 필요로 한다.
1부: 중국은 제국주의가 아니다
1) 맑스주의 대 경험주의
“제국주의”라는 용어는 모든 종류의 상황들에서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 의하여 사용된다. 중국이 제국주의라는 주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자유주의적 아우성을 제쳐두고 맑스주의적 관점으로부터 이 쟁점에 접근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어려움은 제국주의를 정의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이 레닌의 관점에 동의할 것이다:
“독점들과 금융자본의 지배가 확립이 되어 있으며; 자본수출이 확연한 중요성을 획득해왔고; 국제 트러스트들 사이에서의 세계 분할이 시작되었으며, 가장 거대한 자본주의 열강들 사이에서 지구의 모든 영토들에 대한 분할이 완료되어 있는 발전의 단계에 있는 자본주의.”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 (1916년)
하지만, 오늘날 어떤 나라들이 제국주의인지를 결정하는 것으로 나아갈 때에 논란이 제기된다. 일부는 중국, 브라질, 그리고 심지어 그리스를 미국과 연계시키는 한편 다른 이들은 일본과 독일이 거대 열강들임을 아예 부정한다.
의견이 이렇게 폭넓게 다양한 것은 이것이 강령의 문제인 것만큼이나 방법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도덕들이나 추상적인 이상들로부터가 아니라 제국주의의 구체적인 역사적 발전, 즉 변증법적 유물론을 가지고 제국주의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예를 들면, 맑스가 발전시킨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분석은 자본주의가 어떻게 선행했던 봉건주의 질서의 계급투쟁으로부터 뚜렷하게 다른 생산양식으로서 등장했는지를 살핀다. 제국주의에도 같은 방법의 접근이 있어야만 한다: 지난 세기의 계급투쟁을 통하여 진화해 온, 개별 국가의 자리가 전체의 부분으로서 딱 들어맞는, 살아 있는 체제로서.
이것은 좌익들이 이용하는 방법이 아니다. 그들이 어떻게 문제에 접근하는지에 관한 천박하지만 대표적인 예가 ISA 기사의 헤드라인 “중국은 제국주의인가?”에서 발견될 수 있다 (chinaworker.info, 2022년 1월 14일).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하여, 그 기사는 중국이 레닌의 정의에 나오는 다양한 포인트들과 일치하는지를 살펴본다. 중국은 독점들을 가지고 있는가? 중국은 금융자본을 수출하는가? 중국은 대규모 군대를 보유하고 있는가? 일단 모든 체크리스트에 표시가 되면, 중국은 제국주의로 간주된다.
이것은 맑스주의가 아니라 경험주의이다. 세계체제 내부에서 중국의 발전을 평가하는 대신, ISA는 경험적 증거 (군대의 크기, 자본수출의 양, 등)을 추상적 규범 (레닌의 정의)와 비교함으로써 단순히 중국의 성격을 판단한다. 생물학적 측면에서, 이것은 생물들의 진화는 무시한 채 육체적 특징만을 평가하면서 종들을 분류하는 것과 같다. 이 방법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이 방법이, 양질전화를 결정함에 있어서 어떤 특색들의 집합이 결정적인 것인지를 결코 객관적으로 결정하지 않는, 거의 전적으로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이 접근으로는, 특정 나라가 제국주의 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하나의 사실들의 집합이 선택될 수 있는데, 다른 사실들의 선택으로는 그 정반대를 증명할 수 있다.
누가 제국주의 클럽에 있는지를 두고 벌이는 그런 골치 아프게 따지는 논쟁들 사이로 길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제국주의가 역사적으로 구체적으로 진화해왔는지를 평가함으로써 문제 전체에 접근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 체제 안에서 중국의 특정한 위치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종합적인 세계체제의 진화 안에서 중국 자신의 진화를 자리매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오직 이 방법으로만, 우리는 문제에 대한 맑스주의적 답을 얻을 수 있다.
2) 미국 세계질서와 중국
현대제국주의 체제에 대한 모든 분석의 시작점은 1945년 이어야만 한다. 인류 최대의 대학살로부터 미국은 지배적인 제국주의 열강으로 등장했다. 현재의 세계질서의 핵심적인 기둥들이 그런 상황에서 확립되었다.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미국 달러, 유엔, IMF, 나토, 그리고 유럽 석탄과 철강 커뮤니티 (유럽연합의 조상) 모두가 소련에 대적하고, 미국을 위한 과대한 특권들을 소중히 하기 위하여 고안되었다. 다른 자본주의 열강들 – 영국, 프랑스, 독일, 그리고 일본 – 은 미국을 따르는 것 외에는 거의 선택지가 없었다. 구 식민주의 제국들은 세계정치에서 독립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급격하게 멈추었고, 대신 그들의 지위와 특권들은 미국과 그들의 관계들에 의존하게 되었다.
중국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한세기 동안의 제국주의적 약탈이 중국을 신식민지 상태로 만들었다. 중국이 얻었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자리는 단순히 중국이 일본에 대항하는 미국의 동맹이라는 것을 반영했다. 그러나, 이 관계는 모택동의 농민군이 장개석의 민족주의 정권을 패배시켰던, 그래서 중국 부르주아지 계급들의 타이완으로의 도주, 제국주의의 멍에로부터 중국의 해방, 그리고 노동자국가의 수립으로 귀결되었던 1949년에 급진적으로 바뀌었다. 중국혁명은 미국에 대한 수치스러운 타격이었고, 냉전의 악화로 직접적으로 귀결되었다. 공산주의의 확산을 중단시키고 “또 다른 중국”을 피하기 위하여, 미국은 매카시 마녀사냥을 시작했고 한반도와 후에는 베트남에 군사적으로 개입했다. 이 기간 동안, 미국과 중국은 공산주의, 식민지 투쟁들, 그리고 소련을 둘러싼 충돌로 정의되는 세계질서의 양 극에 서 있었다.
닉슨과 모택동이 소련에 대항하는 조약을 체결했던 1972년에 두 나라 사이의 관계는 다시 급격하게 변했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패배하고 있으면서, 미국은 소련과 중국 사이에 부상해왔던 분쟁을 활용함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강화하려고 애썼다. 등소평이 모택동을 인수하고 경제 자유화라는 “개혁과 개방”의 길을 시작하면서 중국과 미국의 관계는 더욱 개선되었다. 하지만, 양자관계는 매우 기이한 성격을 가졌다. 두 나라들은 소련을 침식하기 위하여 함께 일했지만, 그들의 사회적 정권들은 근본적으로 적대적인 채로 였다.
1991년, 소련의 붕괴는 세계 정세에서의 극적인 변화를 의미했고 중국과 서구 사이의 관계들을 위한 새로운 시대를 예고했다. 소련이 사라진 상태에서, 미국은 도전받지 않는 세계열강으로 나섰다. 미국의 패권과 중국 시장의 개방은 국제화라고 알려진 외국 투자와 무역에서의 대규모 확대를 위한 조건을 만들어냈다. 외국 기업들이 값싼 노동력, 정부 계획, 그리고 중국공산당이 보장하는 노동평화에 의지할 수 있었던 중국은 세계의 산업중심이 되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중국에서의 시장자유화는 엄청난 기회를 의미했다. 게다가 자유민주주의가 “냉전에서 승리”했었기 때문에, 중국 공산주의는 더 이상 위협이 아니라, 단순히 서구로의 경제적 통합을 통하여 극복될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이런 감정은 “WTO[국제무역기구] 가입으로 중국은 더 많은 우리의 상품들을 수입하는 것에 동의하고 있으며, 민주주의의 가장 축복받은 가치들 중의 하나인 경제적 자유를 수입하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 그리고 개인들이 힘을 가질 때 … 그들의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그들은 더 큰 발언권을 요구할 것이다”(2000년 3월 9일) 라고 생각했던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에 의하여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중국 공산당의 입장에서 새로운 시대는 위험으로 가득했다. 소련의 붕괴가 만약 당이 나라에 대한 장악력을 잃는다면 무엇이 벌어질지에 대한 경고로 서 있었다. 동시에 1989년 천안문 봉기는 대중들이 들썩이고 있었으며 더 좋은 조건들을 요구했음을 보여주었다. 교착상태는 당을 시장 자유화라는 그의 아젠다 뒤로 굳건히 두기 위한 운동이었던 1992년 등소평의 “남부 시찰”로 깨졌다. 충분한 경제성장이 정치적 불만을 약화시키고 정권의 권력을 강화해줄 것이라는 것이 그 발상이었다.
이것은 성공적이었음이 증명되었다. 미국의 예상들과는 반대로, 중국의 경제적 통합은 중국공산당의 몰락이나 국가독점들의 붕괴로 귀결되지 않았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중국공산당과 외국 자본가들의 수렴하던 이해관계가 정권에 대한 전체적인 압력을 줄여주었고, 경제에 대한 국가통제를 자유화된 자본흐름들과 무역확대를 융합함으로써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중국이 발전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런 동역학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중국의 폭발적 성장이 미국 경제체제로의 통합을 통하여 일어났지 통합에 대한 반대를 통해서가 아니었다. 모든 스탈린주의 정권들처럼, 중국의 외교정책은 제국주의와의 평화공존의 성취라는 목적에 의하여 계속해서 이끌려왔다. 사실, 오늘날까지, 중국은 미국 패권의 기본적인 기둥들 중 어느 것에도 도전해오지 않았다. 중국은 WTO에 가입했고, IMF와 유엔을 지지하고, 여전히 미국 달러로 압도적으로 거래하고 투자한다. 결정적으로, 중국은 세계의 군사 집행자로서의 미국을 대체하기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아왔다.
3) 미국 헤게모니의 쇠퇴
오늘날 세계정세의 핵심적인 모순은 미국 헤게모니가 중국과 기타 제국주의에 억압 당하는 나라들이 상당한 정도로 성장할 수 있는 조건들을 창출했던 한편 이것이 이번에는 미국의 지위를 약화시켜왔다는 것이다. 미국 지배계급은 이것을 이해하며, 자기 자신의 자유민주주의적 세계체제의 주요한 기둥들을 점점 더 침식하고 있다. 2015년 자신의 첫번째 대통령 도전을 시작하기 위하여 아래와 같이 말하던 도널드 트럼프가 이런 이행의 전형이었다:
“바로 지금, 이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중국에 1.3조 달러를 빚지고 있습니다. 일본에는 더 많은 빚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들어오고, 우리의 일자리들을 차지하고, 우리의 돈을 차지하고, 그리고 나서 우리에게 돈을 빌려주고, 우리는 그들에게 이자를 지불하고, 그리고 이제는 달러가 그들의 거래가 더욱 좋도록 상승합니다.
“우리의 지도자들이 얼마나 바보 같습니까? 이런 일이 발생하도록 허용하는 이들 정치인들이 얼마나 바보 같습니까? 그들이 얼마나 바보 같습니까?”
자유주의 질서가 어떻게 미국 자신에 대한 장애물이 되어가고 있는지를 상징하는 가운데, 워싱턴은 이스라엘에 대한 조사를 이유로 국제사법재판소에 대한 경제적 봉쇄를 위협하며, 유엔에 대한 재정원조 철회를 고려하며, 때때로 심지어 나토와 유엔에 반대하여 공개적으로 말한다. 중국공산당은 나름 국제화가 역사의 바꿀 수 없는 힘이며, 중국이 미국에 의하여 수립된 규칙들 속에서 발전을 지속할 수 있다고 여전히 믿는다. 우리는 중국은 자유무역과 국제법을 설교하는 반면, 미국과 유럽연합은 보호주의를 주창하고 그들 자신의 국제 규칙들을 무시하는 기괴한 상황 속에 우리가 있음을 깨닫는다.
종합적으로, 현재의 시대는 제국주의간 경쟁의 고전적 시대였던 1차 세계대전으로 귀결되었던 시대와는 매우 다르다. 당시에는, 프랑스, 영국, 그리고 러시아라는 기존 제국들이 공격적으로 자기 자신들의 식민지 제국들을 확장하고 있던 부상하던 제국주의 열강들 (독일, 일본, 그리고 미국)과 대결상태였다. 1900년대 초에는, 제국주의 체제가 분열되어 있었고, 새로운 그렇지만 이미 자리를 잡은 제국들의 팽창주의적 욕구로부터 불안정성이 나왔다.
1945년 이래, 제국주의 체제는 단결되어 있어 왔다. 오늘날, 미국이 지배하는 고도로 통합된 제국주의 카르텔이 다양한 지역 강국들의 부상으로 점점 더 쇠퇴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수십년 동안 미국과 미국의 동맹들에 의하여 포위공격 당해왔지만, 이제는 그들의 지역적 그리고 국내의 이해관계가 존중받을 것을 요구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세계체제의 안정성이 도전받지 않는 미국의 패권에 의존한다는 조건에서, 이들 상대적으로 온순한 야망들은 존재와 관련된 위협을 대변하며, 현 시대의 격동의 뒤에 있는 것들이다.
소비에트 이후 시대의 제국주의 체제 내에서의 중국의 발전을 이해한다면, 중국의 발전은 팽창적인 제국주의 경로를 어떤 식으로 건 따르지 않아왔다는 것이 분명한데, 최소한 팽창적인 제국주의 경로를 따르는 것은 미국의 경제질서로부터의 분리가 필요할 것이었다. 사실 소련보다 훨씬 더 큰 중국의 경제적 비중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현상유지에 압도적으로 집중했던 조용한 외교정책을 추구해왔음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심지어 훨씬 더 대결적인 전략을 따라왔던 러시아를 보더라도, 러시아가 공격적으로 팽창하기 보다는, 자신의 주변과 동맹들 (조지아, 우크라이나, 시리아)에 대한 미국의 계획들에 반응해오고 있음을 목격한다. 러시아는 미국에 도전해왔지만, 세계의 지도력을 두고 경쟁하지는 않는다. 요점은 세계정치가 제로섬 게임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제국주의 블록의 부상은 1945년 이래 세계를 지배해 온 제국주의 동맹에게 주요한 패배를 안기거나 이들의 분열 없이는 있을 수가 없다.
4) 평화로운 제국주의?
중국이 제국주의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하는 첫번째 실수는 새로운 제국주의 세계열강이 완전히 평화로운 방법들을 통하여 부상할 수 있다는 점을 사실로 상정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고대 로마제국에 대해서 말하고 있건 혹은 레닌이 서술했던 현재 제국주의 체제에 대해서 말하고 있건, 제국주의는 군사적 강제를 요구한다. 군국주의가 경제적 관계들의 산물이라는 사실이 어쨌든 군국주의를 선택적인 성격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착취는 오로지 힘을 통해서만 강요될 수 있다.
군사력의 결정적 중요성은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적 패권에 의하여 지난 30여 년 동안 어느 정도 가려져 있어왔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미국의 힘이 언뜻 보기에는 대체적으로 평화로운 방식을 통하여 기능하는 것처럼 보이는 고도로 통일된 세계경제를 위한 조건들을 창출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독일 혹은 인도의 억만장자들은 그들의 재산이 압수되거나 혹은 그들의 대부들이 취소될 것에 대한 걱정없이 자신들의 돈을 해외에 투자할 수 있다. 이것은 미국 군대가 전체 현재 제국주의 체제를 위한 집행자로서 복무해왔기 때문이다. 세계 전역의 자본가들에게 사적 소유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봉사의 대가로, 미국은 미국달러와 세계 금융자본의 핵심적인 센터들과 기구들에 대한 자신의 통제력을 통하여 잉여가치의 파격적인 몫을 챙긴다.
오늘날까지 세계경제의 안정성이 미국 군대에 의존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결정적이다. 미국 군대는 80개 나라들에 적어도 750개의 기지들을 가지고 있다. 미국과 미국의 동맹들은 파나마와 수에즈 운하들, 말라카, 지브롤타, 그리고 호르무즈 해협들과 같은 모든 중요한 바다의 관문들을 통제한다. 중국의 해상에서의 힘이 성장하고 있지만, 대서양과 인도양, 그리고 지중해와 마찬가지로 태평양은 압도적으로 미국의 호수로 남아 있다. 1945년 이래, 미국 군대는 200개가 넘은 해외 분쟁들에 개입해왔다. 개별적으로 따져보면, 이들 개입들 중 다수가 경제적 혹은 전략적 의미가 매우 작은 것처럼 보인다. 전체로서의 국제 체제를 둘러싼 안정을 지키기 위하여 복무하는 미국의 힘을 입증하는 것들로서 그러한 개입들을 봐야만 한다.
중국의 경제적 발전이 어떻게 미국 제국주의 체제의 핵심적인 기구들 내에서 완전히 이루어져 왔는지를 이미 보아왔다. 심지어 중국이 자본주의라 해도, 제국주의가 되기 위해서 중국은 미국 체제와 결별해야만 할 것이며 중국 자신의 군사력과 기구들을 통하여 자신의 전지구적인 경제적 이해관계를 보장해야만 할 것이다. 세계 정세를 잠깐만 살펴봐도 중국이 이런 방향으로 어떠한 진지한 발걸음들도 떼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실제로는 중국은 지난 40년 동안 (유엔 평화유지군은 제외하고) 해외 개입이 없었던 유일한 의미있는 군사력이다.
오늘날까지, 중국이 해외 투자를 하고 대부를 할 때, 중국 자신의 군사력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미국이 지배하는 기구들에 계속해서 의존한다. 앞서 설명한 이러한 핵심적인 속성이 없다면, 중국은 제국주의 열강으로 여겨질 수 없다. 반대로 주장하는 것은 평화주의적 색으로 제국주의를 칠하는 것이다. 그것은 세계의 나라들이 순전히 상업적 토양에서 초착취 당할 것을 받아들이며, 세계는 이미 완전히 평화적인 방식으로 열강들 사이에서 재분할 되었음을 의미할 것이다.
독일이나 일본과 같은 나라들은 어떠한가? 그들 또한 미국 군대에 의존한다. 이것이 그들은 제국주의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가? 아니다. 독일과 일본 모두는 패권을 두고(재앙적 결과들과 함께) 미국에 도전하려는 시도를 했었고 그들의 패배 이래 그들은 미국 체제의 동반자들이었다. 두 나라 모두는 미국과의 동맹이라는 함수로서 세계경제 안에서 특권적 지위들을 차지한다. 이것은 지난 수십년 동안의 깊은 경제적 통합에도 불구하고 항상 아웃사이더였던 중국과는 다르다.
5) 중국은 어떤 나라들을 억압하는가?
외국들에 대한 억압이 없는 제국주의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것은 의문을 제기한다: 중국은 어떤 나라들을 억압하는가? 중국의 정치적 정권은 자기 자신의 인민들에게 억압적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중국이 자기 자신의 국경들 내부에 있는 소수민족들을 억압한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그러나 만약 이것이 중국이 제국주의라는 모든 이유라면, 이라크와 스리랑카도 이 조건을 충족할 것이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자신들의 국경들 내부에 있는 소수민족들을 억압하며, 모든 나라의 지배자들은 그들 자신의 인민들을 억압한다. 그것이 그 나라들을 제국주의로 만들지는 않는다.
국제사회주의대안 등등은 “그러나 일대일로는 어떤가?”라고 소리를 지른다. “그것은 착취적인 제국주의 프로젝트가 아닌가?” 중국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있는 나라들에 사회간접시설을 건설하고 부채를 안기면서 수십조(미국 달러)를 투자해 왔다는 것은 사실이다. 중국이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로부터 시작하여 그러한 투자들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 또한 의심의 여지가 없다. 중국은 노동조합의 권리들을 공격했고, 관리들을 부패시켰고, 지역의 감정을 무시했으며, 모든 종류의 반동적 정권들을 지원했다. 하지만, 문제는 중국의 행위들이 자애로운지 여부가 아니라 일대일로와 같은 프로젝트들이 중국을 제국주의 지배자로 변형시켜왔는지 여부이다. 다시 말해서, 중국은 상당한 투자를 해온 나라들에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기 위하여 힘을 사용하는가?
중국의 “부채의 덫 외교”의 전형인 스리랑카를 보자. 스리랑카는 유명하게도 새로운 항구를 건설하기 위하여 발생한 중국으로부터의 대출에 대한 이자를 지불하지 못하였고, 그 항구를 99년 동안 중국에 임대해주었다. 그러나 중국이 스리랑카를 지배하는가? 아니다. 2022년 스리랑카가 외국 채권자들에게 (미국달러로) 지불할 수 없었을 때, 조건들을 명령하기 위하여 급습했던 것은 중국이 아니었다. 항상 그랬듯이, 그것은 IMF였고, 채권자들과의 핵심 협상들은 베이징이 아니라 워싱턴에서 열렸다. 심지어 서구의 참관자들은 스리랑카의 부채위기가 중국 대출들 때문이 아니었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파키스탄은 어떤가? 2017년에, 혁명적 공산주의인터내셔널 동맹 (RCIT)는“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은 파키스탄에 대한 식민지화를 위한 중국 제국주의의 프로젝트이다!” 라고 선언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ISA는 나름대로 파키스탄은 미국에 대항하는 중국의 제국주의 블록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중국의 부상’ – 철 지난 견해”, chinaworker.info, 4월 24일). 파키스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지식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이것이 완전히 터무니없는 생각이라는 것을 안다. 중국은 파키스탄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지만, 미국이 지배한다. 이것은 대통령 임란 칸을 그의 직에서 제거하고 감옥에 보내기 위하여 미국이 파키스탄 군부 엘리트와 함께 음모를 꾸미던 최근 2022년까지 가장 분명하게 증명된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중국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중국 제국주의”라는 주장들은 그것들이 아프리카를 문제로 삼을 때 필시 가장 기괴하다. 서구 열강들은 대륙을 극빈과 분쟁의 상태로 유지하면서 수백 년 동안 아프리카를 억압해왔다. 대륙을 덮고 있는 것은 중국의 전초기지들 (중국의 유일한 외국 기지가 지부티에 있다)이 아니라 프랑스와 미국의 군사기지들이다. 12개가 넘는 아프리카 나라들의 절반의 외환보유고를 차지해왔고 외환들을 통제하는 것은 프랑스이다. 그리고 다른 모든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부채위기들은 인민폐들이 아니라 달러들과 유로들의 지불들을 둘러싸고 발생한다.
다시 한번 더, 이것은 중국이 아프리카에서 자애로운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함이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요점은 단순히 중국이 아프리카에 있는 어떤 나라에서도 강요를 통하여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리비아, 소말리아, 말리, 니제르, 차드 그리고 너무도 많은 다른 나라들을 황폐화시킨 것은 중국이 아니다. 이 모든 사례들에 대해서는 서구 제국주의자들에게 책임이 있다.
이것이 우리를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로 인도한다. 중국은 태평양을 중국의 호수로 변형시키고자 하는가? 우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심지어 중국이 그렇다고 해도, 이것이 중국을 제국주의로 만들지는 않는다. 구체적일 필요가 있다: 중국이 현재 서 있는 정세는 어떠한가? 일본의 2차 대전 패전 이래, 미국이 태평양의 주인이었다. 대부분이 미군을 자신들의 영토에서 환영하는 미국의 동맹들에 의하여 중국이 완벽하게 포위되어 있음을 보기 위해서는 동지들은 단지 지도를 보기만 하면 된다. 필리핀, 남한, 인도네시아, 타이완 – 이들 나라들 중 누구도 중국에 의하여 억압당하지 않으며, 미국이 이 모든 나라들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것은 평화적이고 점진적인 과정이 아니었다. 이것은 도쿄에 대한 폭격,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의 대학살, 한국전쟁, 그리고 인도네시아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학살과 수도 없이 많은 다른 범죄들 속에서 확립되었다. 서구 제국주의를 비호하는 자들은 이 지역에서 중국의 군사력증강에서 피비린내 나는 살인을 외친다. 그러나 중국이 어느 나라를 침략해왔는가? 태평양에서 중국제국주의에 대한 울부짖음들은 미국 지배라는 현상에 대한 우둔한 굴종들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사실들을 객관적으로 봐야만 한다.
대만에 대해서 말할 것 같으면, 그 사례가 매우 독특하다. 역사적으로 대만은 중국의 일부였다. 1949년 혁명 이후, 대만은 중국 자본가계급의 망명지가 되었다. 그때 이래, 대만은 중국을 다시 한번 제국주의 지배 아래 두기 위한 교두보로서 미국에 의하여 의도적으로 만들어졌다. 오늘날 대부분의 대만 인민들이 중국과 재통일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것은 많은 부분 중국공산당이 오직 탄압과 동시에 타이완에서의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것을 제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타이완을 둘러싼 분쟁이 미국과 일본의 아시아에 대한 제국주의적 통제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을 바꾸지는 않는다. 본토로부터 타이완의 분리를 설명하는 것이 바로 이 통제이다. 타이완을 둘러싼 전쟁은 중국에 의한 제국적 정복 전쟁이 아니라 1949년 혁명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 될 것이다.
6) 정치적 함의들
중국과 러시아 제국주의를 둘러싼 시끄러운 소동은 지구 전체를 억압하는 것이 미국 통솔력 아래 있는 작은 열강 그룹이라는 사실을 가리는 것에만 복무할 뿐이다. 중국과 러시아 모두 그들의 직접적인 국경들이나 주변을 넘어서는 나라들을 억압하지 않는다. 사실 그들은 서구 제국주의에 의하여 수십년 동안 포위공격을 당해 온 나라들이다.
혁명적 전략을 위한, 그리고 동아시아나 동유럽의 프롤레타리아트를 단결시키기 위한 출발점은 그 지역으로부터 미국 제국주의를 축출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이것이 중국공산당이나 크레믈린을 지지하는 것이 필수적임을 의미하는가? 당연히 아니다. 그들의 반동적 정책들은 매 순간마다 제국주의에 맞서는 투쟁을 손상시킨다. 예를 들면, 러시아와 중국정부들의 우크라이나와 위구르에 대한 억압은 미국과 미국의 동맹들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단결을 손상시킨다. 그들의 민족적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동아시아, 동유럽, 그리고 세계를 억압하는 열강들에 맞서는 투쟁을 강화해 줄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 대한 하나의 전쟁에서 러시아나 중국의 승리가 세계 제국주의 체제의 꼭대기에 있는 미국의 지위를 그들이 차지할 것임을 의미하지는 않을까? 이 승리가 성취되는 구체적인 상황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 공산주의자들의 임무는 미국 질서의 붕괴가 노동계급에게 유리한 혁명적 국제주의적 조건들에서 벌어지는 것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확실하게 투쟁하는 것이다. 이 투쟁에 명확한 방향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매 단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내일 또 다른 열강이 새로운 억압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오늘 세계를 억압하는 열강인 미국의 패배를 위하여 투쟁하지 않는 것은 최악의 범죄일 것이다.
사실은, “중국 제국주의”를 규탄하는 것은 미국과 미국의 동맹들의 지배를 반대하는 것에 대한 거부를 가리는 얄팍한 무화과 잎사귀이다. 좌익에서 이 입장의 강세는 제국주의에 맞서 중국을 방어하는 한편으로 노동조합 관료집단이나 자유주의 세력들에 의하여 존중 받을 만 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서구에 줄을 댄 나라들에서는 불가능한 현실을 반영한다. 미국과 중국을 등가로 놓는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급진적으로 들릴지 모르나, 미국은 1945년 이래로 전체 제국주의 체제를 지배해온 반면, 중국은 자기 국경 외부 세계의 어느 곳도 지배하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들이다. 당연히, 동지들은 중국공산당의 정책들을 방어하면서 혁명가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중국 제국주의”라는 악귀를 제기함으로써 미국 지배에 맞서는 투쟁을 거부하는 것은 조잡한 사회적 배외주의이다.
2부: 중국은 자본주의가 아니다
1) 맑스주의와 국가
중국이 자본주의인가 혹은 노동자국가로 남아 있는가를 토론함에 있어서, 기본적인 방법론적 접근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국주의에 관한 문제와 마찬가지로, 좌익의 대부분이 질문이 시작되는 곳에서 그 질문을 끝낸다. “중국이 자본주의”라는 진영에 대해서 말할 것 같으면, 단순히 억만장자와 다국적 기업들의 숫자를 지적하는 것으로 끝낸다. 반대의 관점에서는, 전략적 산업들에 대한 국가통제와 높은 경제성장률이 중국이 자본주의가 아님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고 여긴다. 다시 한번, 그것의 구체적인 역사적 발전이 아니라 개별적 단면들을 바라보는 것으로는 문제를 이해할 수 없다.
자본가들의 증가와 높은 수준의 국유화된 산업들 모두가 중국을 이해하는 것에 있어서 중요한 열쇠들이지만, 그것들 자체만으로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는다. “소비에트 국가의 계급적 성질” (1933년 10월) 에서 트로츠키가 지적했듯이, 볼셰비키들은 러시아혁명의 첫 1년 동안에는 산업을 국유화하지 않았고, 산업은 노동자통제 하에서 사적소유들로 남아 있었다. 1921년에, 볼셰비키들은 신경제정책을 통하여 농경에서 시장관계들을 재도입했지만, 아직은 이것이 자본주의로의 복귀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이에 더하여, 자본가계급은 특정한 위기들에 (예를 들면, 1970년대 포르투갈) 대응하여 산업의 거대한 부분을 스스로 국유화할 수 있다. 이러한 예들은 하나의 고립된 요소로서 취해진 소유형태들은 한 나라의 계급적 성질을 결정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음을 보여줄 뿐이다.
맑스주의자들에게는, 문제의 핵심이 국가 그 자체, 즉 무장력들과 관료집단이다. 어떤 계급독재를 그들이 방어하는가? 하나의 국가가 취할 수 있는 정치적 형태들에서의 가능한 커다란 차이들에도 (민주주의, 보나파르트주의, 파시즘 등) 불구하고, 국가는 항상 하나의 특정한 계급의 지배를 의미한다. 엥겔스를 요약하면서 레닌은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국가는 계급적대들의 화해불가능성의 산물이면서 발현이다. 계급적대들이 객관적으로 화해를 이루는 것이 불가능한 곳에서, 그러한 때에, 그리고 그러한 한에 있어서 국가가 나타난다. 그리고, 역으로, 국가의 존재는 계급적대들이 화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국가와 혁명 (1917)
“소부르주아지 민주당원들”은 “국가는 자신의 대립물 (자신에 반대되는 계급)과 화해를 이루는 것이 불가능한 특정 계급의 지배기관이다”라는 것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레닌은 주장했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도 그렇다. 중국의 계급적 성질과 중화인민공화국(PRC)의 미래 전망들에 관한 모든 실수는 레닌이 윤곽을 잡았던 국가에 대한 이들 기본적인 개념들에 대한 거부에 기초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수정주의는 중국공산당 자신과 함께 출발한다. 민족주의 부르주아지 계급을 포함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 중국의 “모든 혁명적 계급들의 연합독재”는 “신민주주의에 대하여” (1940년)에서 윤곽이 잡혔던 모택동 자신의 개념이다. 이것은 완전한 환상인 것으로 증명이 될 것이었다. 모택동의 인민해방군(PLA)이 국민당의 민족주의 세력들을 패배시켰을 때에는 “연합독재”는 없었다. 부르주아지 계급은 압도적으로 대만으로 도망을 갔고, 그렇지 않았던 자들은 몰수가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 – 하나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 는 자신의 대립물과 화해를 이루는 것이 불가능했고, 이것은 맑스주의 이론의 명백한 확인이었다. 하지만, 등소평의 “개혁과 개방”의 뒤에 이 똑같은 환상이 있었고, 아직까지 중국공산당은 이것을 고수하고 있다. 등소평으로부터 시진핑에 이르기까지, “중국적 특색들을 가진 사회주의”는 부르주아지 계급과 사회주의 사이에는 아무런 근본적인 충돌이 없다는 환상들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한 환상들은 중화인민공화국에 치명적인 위협이다.
다른 방식으로, 중국이 자본주의라고 주장하는 다양한 사회주의자들이 똑같은 실수를 저지른다. 중국공산당이 그렇게 하듯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양립할 수 있음을 단정하는 대신, 이들은 1949년 이후의 노동자국가로부터 1990년대에 자본주의 국가로의 점진적이고 매끄러운 이행이 중국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에 따르면, 이러한 이행이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구조가 파탄나고 새로운 국가로 대체되는 격렬한 위기의 시대가 없이 벌어졌다. 즉, 그들은 똑같은 국가기구가, 똑같은 관료집단이, 그리고 똑같은 정권이 두 개의 적대적인 계급들의 독재를 방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국가의 존재 바로 그것이 체현하는 화해불가능한 계급적대를 지워버리는 또 다른 방식에 불과하다. 1930년대 소련과 관련하여 정확하게 이러한 주장들에 답하면서, 트로츠키는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한 계급의 수중에서 다른 계급의 수중으로의 권력의 이동이라는 대격변적 성격과 관련된 맑스주의 명제는 역사가 미친듯이 앞으로 쓸어가는 혁명적 시기들에 뿐만 아니라, 사회가 뒤로 굴러가는 반혁명의 시기들에도 적용된다. 소비에트 정부가 프롤레타리아트적인 것으로부터 부르주아지적인 것으로 점진적으로 변해왔다고 주장하는 자는, 말하자면, 개량주의의 필름을 거꾸로 돌리고 있고 있는 것이다.”
- “소비에트 국가의 계급적 성격”
비록 시장관계들이나 계획경제가 지배적인 정도가 분명히 중요한 요소들이기는 하지만, 중국의 계급적 성격을 확립하기 위하여 핵심적인 기준은 이러한 것들이 아니다. 오히려 국가기구의 본성과 기능에서의 질적인 변화가 있어왔는지 여부이다. 중국이 자본주의라고 믿는 자들은 트로츠키가 틀렸고 정말이지 하나의 국가가 점진적으로 그 계급적 본성을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거나, 혹은 언제 그리고 어떻게 중국에서 반혁명이 벌어졌는지를 설명해야만 한다.
2) 동유럽과 소련에서의 반혁명
1930년대 트로츠키의 이론적 주장과 오늘날 사이의 핵심적인 차이는 우리가 일련의 명백한 반혁명들의 역사적 예들을 보아왔다는 것이다. 유럽의 구 노동자국가들과 소련에서 자본주의가 복구되었다는 사실을 둘러싸고는 거의 어떠한 논란도 없다. 폴란드, DDR(동독), 유고슬라비아, 그리고 소련 그 자신에서 과정은 달랐으나, 이들 예들의 각각의 것이 “한 계급의 수중에서 다른 계급의 수중으로의 권력의 이동이라는 대격변적 성격”이 사실임을 완전하게 보여준다.
각각의 사례에서 어떻게 반혁명이 승리했는지에 관한 자세한 역사로 들어가지 않고도 모든 사례들에 공통적인 몇 가지 핵심적인 특징을 구분하는 것이 가능하다. 각각의 사례에서, 첨예한 정치적 위기가 스탈린주의 정권의 붕괴로 귀결되었다. 비록 어떤 국가들에서는 과거의 스탈린주의자들이 자본주의 하에서 저명한 심지어 지도적인 지위들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어떤 사례에서도 과거의 공산당이 권력에 남아 있지는 않았다. 게다가, 모든 사례들에서, 국가구조가 완전하게 재조직되었다. 유고슬라비아, 체코슬로바키아, 동독, 그리고 소련에서, 국가들은 분열되거나 청산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그 사례가 아니었던 곳에서도 국가는 자신의 무장력을 재조직했고, 이름, 헌법, 그리고 법률체제를 바꾸었다.
유럽에는 적군이나 인민군대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국기들에는 더 이상 망치와 낫이 없고(트랜스니스트리아를 제외하고는), 사회주의 공화국들과 인민공화국들이 없다. 혹자는 그런 이름들과 상징들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틀렸다. 정복군으로서 자본주의는 자신의 깃발, 자신의 상징들, 자신의 가치들과 언어를 가져왔다. 이 변화들은 국가권력에서의 결정적인 단절을 표현했다. 이것들은 스탈린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결정적인 승리를 대변했다.
문제의 경제적 측면을 살펴보자. 반혁명으로 귀결되기까지, 동부 블록에 있는 많은 나라들이 수년에 걸쳐 자신들의 경제들을 자유화하는 방책들을 취해왔다. 하지만, 자본주의로의 복귀는 점진적인 경제적 이행이 아니라 재앙적인 충격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과거의 경제적 모델들이 갑자기 붕괴되었고, 일반적으로 IMF의 명령하에서 새로운 모델이 도입되었다. 즉각적인 결과들은 탈산업화, 대량실업, 물가인상과 불경기였다.
“계획경제로부터 시장경제로의 이행 동안 소득, 불평등, 그리고 빈곤”이라는 1998년의 한 세계은행 연구에 따르면, 자본주의로 이행한 나라들에서 생산된 재화와 용역의 총가치가 실질적으로 적어도 4분의 1만큼 줄었다. 대부분의 경우, 국가소유 기업들이 똥값으로 청산되었다. 벨라루스는 그 법칙을 증명하는 예외적인 경우이다. 국가기업들이 청산되지는 않았어도, 일인당 GDP가 34% 축소되는 등 경제적 충격은 마찬가지로 잔혹했다.
자본주의 복구의 사회적 결과들은 극적이었다. 기대 수명이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줄어들었다. 러시아는 사망률이 모든 산업화된 나라가 평화시기에 경험했던 것을 넘어서 올라갔다. 유고슬라비아는 내전 속에 해체되었다. 구 공산주의 국가들 전역에서 빈곤이 폭발했다. (전쟁 중에 있던 나라들을 제외한) 이들 나라들에 대한 세계은행 연구는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1989년에는 (국제적 가격들에서) 하루에 4달러 아래로 살아가는 인민들의 숫자가 (약 3억 6천만 명의 인구들 중에서) 1400만 명으로 추산되었던 반면, 이제는 1억 4천만 명이 똑같은 빈곤선 아래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결론들은 분명하다: 모든 곳에서 반혁명은 잔혹한 과정이었다. 그것이 정치적, 경제적, 혹은 사회적 수준에서 이건 아니건, 노동자국가로부터 자본주의로의 이행은 갑작스러웠고 과거와의 분명한 단절을 의미했다.
3) 중국에서의 개혁과 개방
동유럽과 소련에서의 반혁명들이 중국에서 “개혁과 개방”과 어떻게 비교되는가? 사유화의 숫자와 시장관계들의 확산과 같은 고립된 요인들에만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비슷한 점들을 가리킬 수는 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뒤로 물러나 큰 그림을 살펴본다면, 두 가지는 어떠한 공통점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아주 명백하다.
정치적 차원에서, 그 차이점들이 가장 명백하다. 중국은 80년대 후반 유럽과 중앙아시아에 있는 비자본주의 나라들을 뒤흔들었던 정치적 격동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 격변의 결과는 정확하게 반대였다. 1989년 천안문 항의들이 촉발했던 학생들과 노동자들의 광범위한 봉기가 CPC 정권을 위기 속으로 내 던졌다. 그러나 동독, 폴란드, 그리고 소련에 있는 스탈린주의 관료집단들과는 달리, 중국공산당은 붕괴하지 않고 유혈탄압의 파도 속에 그 운동을 분쇄했다. 그 결과, 중국공산당은 정치권력에 대한 자신의 장악력을 강화했다. 천안문 사태들의 결과는 정치적 단절이 아니라 연속이었다.
오늘, 모든 핵심적인 국가기구들이 그들의 기능과 외양에서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은 채로 있다. 공산당이 여전히 중국을 지배한다. 무장력들은 모택동의 농민군에 대한 자신의 연속성을 취하는 인민해방군으로 남아 있다. 인민공화국은 여전히 건재하고, 최고의 국가기관은 여전히 (공식적으로) 전국인민대회이며, 가장 명망있는 지위는 공산당 총서기로 남아 있다. 누구도 이 사실들에 대하여 반박하지 않는다 – 이 사실들은 중국이 자본주의라고 생각하는 자들에 의하여 그냥 무관한 것으로 여겨진다.
경제와 사회적 영역들은 어떠한가? 트로츠키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붕괴로 귀결되는 소련에서의 계속적인 관료적 지배는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 성장의 정체로, 끔찍한 사회적 위기로, 그리고 전체 사회의 수직 추락”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소비에트 국가의 계급적 성격”). 어떻게 이것이 정확하게 동유럽과 소련에서 벌어졌던 것임을 우리는 이미 보아왔다. 하지만 우리는 중국에서는 완전히 반대의 것을 본다. 1990년에는 역사상 가장 놀라운 생산력들의 발전, 전례가 없는 빈곤축소, 그리고 사회경제적 지표들에서의 일반적인 개선이 있었다.
이것이 중국에서의 시장 자유화가 노동계급의 이해에 따라서 이루어졌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자본주의 기업들과 외국 벤쳐들에서의 진저리나는 노동조건들에 더하여, 노동계급의 거대한 층들이 사유화들과 시장개혁들 때문에 지독하게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명백하게 중국경제는 반혁명이 있었던 나라들에서 경험했던 것과 같은 파괴적 충격을 겪지 않았다. 개혁의 과정은 극적인 결과를 낳았지만, 그것은 점진적으로 그리고 전체적인 사회구조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사실, “개혁과 개방”의 전체 포인트는 자본주의를 복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스탈린주의 정권들의 운명을 피하기 위한 중국공산당의 경제적 조건들을 창출하는 것이었다. 관료집단 그 자신이 어떻게 이 변형을 대변했는지를 보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 복구의 전환점으로 여기는 1992년 남방시찰 동안의 등소평을 인용할 만하다:
“경제특구들을 건설하는 것에 관해서, 일부 사람들은 그것이 자본주의의 도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여부를 의심하면서 바로 시작 때부터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심천 건설에서의 성취들은 이 사람들에게 명확한 답을 제공해왔다: 경제특구들은 사회주의이지 자본주의가 아니다. 심천의 사례에서, 공공소유 부문은 경제의 대들보인 반면, 외국 투자 부문은 4분의 1만을 차지한다…. 이것들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있는 한, 걱정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우리의 이점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대형과 중간 크기의 국가소유 기업들과 지방기업들을 가지고 있다. 더 중요하게는, 정치권력이 우리의 수중에 있다.”
“무창, 심천, 주해 그리고 상해에서 행해진 대담으로부터의 발췌” (1992년 1월 18일-2월 21일)
요점은 등소평이 사회주의에 대한 그의 헌신에 대하여 진실인 정도가 아니다. 그렇기 보다는, 이들 단어들은 그것들이 연속성을 위한 명백한 열망을 보여주기 때문에 유의미하다. 이것들은 새로운 사회적 정권을 건설하는 것에 대하여 단호했던 보리스 옐친의 단어들이 아니라, (부하린이나 고르바쵸프 같은) 우익 스탈린주의 개혁가의 단어들이다.
그러나 중국에서의 불평등들은 어떤가? 그것들이 러시아와 다른 구 노동자국가들에서 처럼 폭발했는가? 불평등들은 정말이지 가공할 정도이고, 이것은 중국공산당 정책들의 반동적 성격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것이 새로운 것이 거의 아니라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모택동 하에서 굶주렸던 수백만의 인민들을 살펴보기만 하면 된다. 다시 한번, 단순히 통계들을 보다 더 깊이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러시아에서는, 불평등들이 폭발했고, 억만장자들이 총체적인 사회적 쇠퇴라는 상황 속에서 등장했다. 중국에서는, 이 과정이 전반적인 사회적 진보라는 상황 속에서 벌어졌다. 첫 번째 경우에는 외국자본과 소수 상류층들에 의하여 약탈당하고 있는 썩어가는 사회가 있다. 나머지 경우에는, 급속하게 발전하는 사회에서 불균형적인 몫을 챙기는 자본가들과 관료들이 있다. 두 경우 모두에서 지니 계수가 올라가지만, 이것이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적 과정들을 통하여 발생한다 – 한쪽에서는 반혁명, 다른 한쪽에서는 외국자본의 경제에 대한 국가통제와의 융합에 기초한 고도성장.
4) 개량주의의 필름을 뒤로 돌리기
중국 국가와 정권이 본질적으로 온전하게 남아 있어 왔다는 명백한 사실에 직면하여, 중국이 자본주의라는 것에 대한 다양한 지지자들은 이 문제를 무시하거나 이론적으로 이것을 둘러대야만 한다. 적어도 그 문제를 풀기 위하여 시도하는 두 가지 예들을 살펴보자.
투사경향의 전통
투사경향은 의회 다수를 장악한 사회주의자들이 평화적으로 자본주의 국가의 통제력을 장악함으로써 사회주의가 성취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중국이 자본주의라는 관점의 가장 시끄러운 지지자들 중에 이 경향의 다양한 파생조직들이 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테드 그란트의 이론들에 스스로를 기초하고 있는 노동자 인터내셔널 위원회(CWI)는 동유럽에서 스탈린주의의 붕괴 이전까지 자신의 개량주의 강령을 기형화된 노동자국가들로 확장했다. CWI 국제집행위원회의 1992년 문서는 이 기간에는 “노동자국가로부터 유래한 경제적 기초에 의존하는 반혁명적 정부들이 자본주의를 수립하는 것으로 움직이는 기이한 국가들”의 등장이 있었으며, “그러한 조건들 하에서는 하나의 고정된 사회적 범주 즉 자본주의 국가 혹은 노동자국가를 적용하는 것이 항상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유지했다 (“스탈린주의의 붕괴”). 레닌의 “계급적대들의 화해불가능성”은 사라지고, 구멍투성이의 “하이브리드 국가들”이 들어온다.
이 수정주의적 이론의 구체적인 결과는 CWI가 소련을 파멸시키기 위하여 옐친이 세웠던 바리케이드들에 능동적으로 참여했던 것이었다. 반혁명이 불가피했음을 부정했지만, 그들은 결국 하나의 반혁명에 참여했다. 결국, 러시아가 1991년 이전에 더 이상 노동자국가가 아니었다면, 방어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소련 파괴의 재앙적 결과는 이 관점의 완전한 파산과 이 관점이 대변했던 역사적 배신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 실패로부터 배우기는커녕, CWI와 그 파생조직들은 똑같은 방법론을 오늘날의 중국으로 확장해왔다. 팜플렛 중국은 자본주의인가? (2000년 5월)에서, ISA의 로렌스 코트스는 중국이 점진적으로 자본주의를 향하여 이행했다고 주장하기 위하여 “하이브리드 국가”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중국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1-92년까지 하이브리드였다. 하나의 체제로부터 다른 것으로의 이행은 완성되지 않았었다 – 이것은 두 개의 길들 혹은 전망들이 가능했던 기간이었다. 이것은 더 이상 그 경우가 아니다. 주요한 요소는 소련의 붕괴와 국제화의 재촉이라는 국제적 사건들이었지만, 결정적인 전환점은 천안문에서의 운동에 대한 분쇄와 이것이 의식성에 미친 영향이었다.”
우리가 이미 보아왔던 것처럼, 천안문의 결과는 단절이 아니라 정치적 연속성이었다. 국제적 상황은 어떤가 하면, 이것이 최고의 중요성을 띄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 벌어졌던 어떤 것 때문에 국가의 성격이 변하지는 않는다. 러시아 내전의 운명은 국제적 사건들에 의하여 많은 부분 결정되었지만, 국가의 성격은 볼셰비키들이 권력을 장악했을 때 변했었다. 코트스에 의하여 지워졌던 그렇게도 결정적인 전환점들이 정확하게 이것이다. 국가가 화해불가능한 계급적 이해관계라는 근거 대신에, 우리는 정권과 국가구조 전체가 온전한 채, 그리고 계급 이해관계들의 결정적인 충돌이 없이 하나의 단계로부터 또 다른 단계로 점진적으로 지나갈 수 있는 일련의 국가 형태들을 알게 된다. 이것은 단순히 중국에 적용된 투사의 낡은 의회 개량주의이다.
RCIT
다른 정치적 전통을 가진 RCIT는 적어도 정치권력의 문제에 대한 약간의 고려는 한다. 그들에 따르면, “스탈린주의 관료적 노동자정부가 말과 행동 모두로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재수립할 것을 굳게 결의한 부르주아지 복구주의 정부에 의하여 대체되거나 스스로를 그 정부로 변형시킬 때” 자본주의 반혁명이 발생한다 (쿠바의 혁명은 배신당했는가?, 2013년).
우리는 시진핑과 등소평 모두가 자본주의를 복구하는 것에서 결단코 얼마나 “굳게 결의”되지 않았는지를 보아왔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스탈린주의 관료적 노동자정부”가 스스로를 “부르주아지 복구주의 정부”로 변형시킬 수 있다고 RCIT가 주장한다는 점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RCIT에게는, 기형화된 노동자국가들에 있는 국가탄압의 기구들이 궁극적으로는 이미 부르주아지적인 것이라고 그들이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래와 같이 주장한다:
“트로츠키가 명시적으로 그것을 공식화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저작들로부터 보면,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에 대한 노동계급 혁명이 프롤레타리아트 소유관계들을 타도하는 있을 수도 있는 자본주의 복구보다 훨씬 더 격렬할 것임을 예측했음이 명백하다. 그 이유는 ‘부르주아지-관료’ 국가 기제 (즉, 경찰, 상비군, 관료집단)은 프롤레타리아트적 기구가 아니고, 노동계급보다는 부르주아지 계급에 훨씬 더 가까운 소부르주아지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의 기구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강조]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이 소부르주아지적 성격을 가진다는 것은 맞지만, 그들이 지휘하는 국가 기제가 “프롤레타리아적 기구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완전히 틀렸다. 이 수정주의적 관점은 노동자국가의 정의 바로 그것을 거부하는 것에 이른다. 국가와 혁명에서 레닌은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모든 위대한 혁명적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엥겔스는 뿌리가 깊을 뿐만 아니라 말하자면 석화된 편견들에 의하여 텅 비어 있는 만연한 속물근성이 고려하는 것은 주의할 가치가 가장 적으며, 가장 습관적인 것이라는 점으로 계급의식적 노동자들의 주의를 끌려고 시도한다. 상비군과 경찰이 국가권력의 으뜸가는 기구들이다.” [우리의 강조]
노예제적, 봉건적 혹은 자본가의 독재 등의 모든 다른 계급 독재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국가권력의 으뜸가는 기구들”은 “상비군과 경찰”이다. 관료적으로 기형화된 노동자국가에서는, 이들 “무장한 자들의 기관들”이 관료집단에 의하여 노동계급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반하여 힘을 행사하지만, 그것들은 노동자국가의 기관으로 남아 있다.
중국에서는, 인민해방군이 내전의 시기 이래 좌익적 반대를 진압하기 위하여 사용되어 왔는데, 1989년에 한가지가 생생하게 목격되었다. 하지만, 인민해방군은 중국 자본가국가를 파괴했고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수립했다. 인민해방군이 소부르주아지 기관으로 남아 있었는가? 중국은 소부르주아지 국가였는가? 그렇지 않다. 1949년 이래, 인민해방군은 안팎의 반혁명에 맞서는 프롤레타리아트 권력의 핵심 기관이었다. 대만의 중국 부르주아지 계급이 결코 본토로 넘어올 수 없었던 것은 인민해방군 때문이다.
트로츠키가 설명했듯이, 기형화된 노동자국가에서 관료집단과 국가 사이의 관계는 친자본주의적 관료들과 노동조합 사이의 관계와 유사하다. 비록 관료들이 평조합원들의 불만을 억누르기 위하여 노동조합 기제를 이용할 수 있고, “노동계급 보다는 부르주아지 계급에 더 가깝다”고 해도, 노동조합 그 자체는 그 존재 바로 그것이 사업주들에 맞서는 성벽이라는 노동계급의 기구로 남는다. 노동조합 관료가 자본가들의 모순적이지 않은 대변자가 완전하게 되기 위해서는, 그는 노동조합을 떠나야만 한다. 똑같은 방식으로, 스탈린주의 정부는 혁명의 국가기관들과의 고리를 끊지 않고는 “자본가 정부”가 될 수 없다.
1991년 소련에서 끊어졌던 것이 정확하게 바로 이 고리이다. 옐친은 노동자국가를 파괴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관료집단의 권력의 원천을, 그리고 지배계층으로서의 관료집단 자체를 파괴했다. 중국에서는, 관료집단이 의식적으로 이런 길을 피해왔고 국가 탄압의 기구들에 대한 굳건한 통제력을 유지함으로써 단결된 집단으로서 스스로를 유지해왔다. RCIT의 국가에 관한 “이론”의 전체 요점은 두 가지 사례들 사이의 질적 차이를 지우려는 것이다. 그들에 따르면, 경찰과 군대가 항상 기껏해야 소부르주아지 계급의 기관들이기 때문에,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이 손상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가운데, 하나의 계급독재로부터 다른 것으로 매끄럽게 지나가는 것이 가능하다. 이것은 국가라는 문제에 대하여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거부일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레닌주의에 대한 거부이기도 하다.
그들의 이론을 따라서, RCIT는 중국과 베트남이 자본주의라고 선언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쿠바와 북한도 같은 것이라고 선언한다! 반혁명의 필요성을 지워버림으로써, 그들은 아무데서나, 심지어 경제와 정권이 명백하게 전형적인 스탈린주의 모델들에 기초해 있는 나라들에서 조차, 자본주의를 찾아낸다.
5) 누가 중국을 지배하는가?
국가에 관한 기본적인 맑스주의 원칙들의 재언명이 우리의 비평가들을 설득할 수 없을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 이론적 지점들은 사실들에 모순된다고 그들은 답할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814명의 억만장자들과 세상에서 가장 큰 자본가 기업들 중 많은 수를 보유하고 있으며, 심지어 중국의 국가소유 기업들(SOEs)은 시장원칙들에 따라서 운영되고 있다.
이것들은 분명히 중요한 사실들이지만,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발전을 안내하는 역사법칙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 속에 그것들이 위치해 있어야만 한다. 인류는 비행의 과학을 숙달했다지만, 이것이 중력의 법칙에 위배되지는 않는다. 사실, 중력의 법칙을 이해함으로써만, 어떻게 비행기가 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다. 중국은 자본가들이 있는 기형화된 노동자국가이다. 이것은 매우 모순적인 발전이지만, 이것이 국가에 대한 맑스주의 이론에 위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맑스주의 이론을 가지고서만 오직, 우리는 경험적 증거를 적절하게 이해할 수 있으며, 누가 진짜 중국을 지배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적절하게 답할 수 있다.
중국의 계급적 성격의 점진적 변화를 제기하는 이론들이 가지는 가치를 이미 보아왔다. 그러나 중국이 자본주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이론적 문제에는 덜 집중하고 경험적 사실들에 대한 인상주의적 해석에 더 집중한다. 예를 들면, 중국공산당 사회주의를 방어하는 두 사람에 대한 최근의 논박에서, RCI는 아래와 같이 주장한다:
“비록 국가가 서구의 경쟁자들의 경제에서보다 더 영향력 있는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경제를 ‘지배’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명백하다. 그러나 여기서 요점은 은행들이 ‘사적 주식소유주들 보다는 정부에 우선적으로 책임을 진다’고 해도, 은행들과 정부 둘 다 시장의 필요라는 명령들 앞에서는 무력하다는 것이다. 시장은 ‘사회주의를 위해 복무’하지 않는다.”
다니엘 몰리, “‘동쪽은 여전히 붉은가?’ 중국이 자본주의임을 부정하는 자들에 답하며” (6월 7일)
이 입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RCI는 2008년 대규모 금융위기(GFC)에 뒤이어 중국공산당이 취했던 경제방책들은 중국경제에서의 장기적 불균형들을 키웠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주장이 중국공산당의 정책들이 잘못 인도되었음을 보여주지만, 이것이 중국공산당이 시장에 의하여 지배받고 있음을, 그리고 중국공산당이 RCI의 말대로 “경제와 그 자신의 국가소유 기업들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 왔음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사실은, 2008년은 아주 정반대를 증명한다. 정당(2012년)에서 리차드 맥그레고르는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당의 힘은 2008년 후반과 2009년 초에 보여졌다…. 중앙은행, 은행규제 당국, 그리고 심지어 은행 그 자신들이 모두 그 위기에 대한 대응을 마련함에 있어서 주의를 하라고 충고했다. 이들 삼자 모두가 지난 10여 년 동안 신뢰할 수 있는 상업은행 체제를 건설하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해왔었다. 하지만, 가파른 둔화의 나락을 응시하던 정치국은 돈 펌프가 작동하게 하라는 위로부터의 포고를 발표했다. 일단 이렇게 된 이상, 은행들은 스타팅 블럭들로부터 달리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2007년 최고 3분의 1이었을 때와 비교해서, [대출들의] 15%만이 가구 소비자들과 사적 사업들에게 갔다. 대부분이 국가 기업들에게로 갔다.”
이 시기 정부들이 은행들을 대체적으로 통제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들이 은행들로 하여금 돈을 대출하도록 강제할 수 없었던 서구에 있는 은행들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중국에 있는 은행들이 행동했다고 저자는 설명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근본적으로, 2008의 금융위기는 두 개의 사회적 정권들이 다르게 반응했음을 보여주었다. 시장이 지배하던 자본주의 서구에서는, 붕괴로부터 금융체제를 지키고 수익성과 안정을 보장하기 위하여 국가가 개입했다. 중국공산당이 경제를 통제했던 중국에서는, 국가가 정권의 안정을 확보하기 위하여 개입했다. 그 과정에서, 국가는 은행들이 수립하기 위하여 십수 년을 보냈던 수익성이라는 원칙들에 대하여 반대로 행동했다.
RCI는 이것을 다루지 않는다. 그들은 2008년에 뒤이은 투기 거품의 존재를 관찰하고는 중국이 자본주의이고, 중국공산당은 “통제력을 상실” 해왔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다시 한번, 문제를 자세히 들여다 보자. 중국공산당은 이 투기 거품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해왔는가? 2020년에, 중국공산당은 “3개의 레드라인들”이라는 규제를 도입했는데, 이 규제는 주택 거품을 터뜨리는 것을 특별히 겨냥했다. 이것은 부동산 재벌 헝다(恒大)가 파산하고 부문 전체가 침체로 돌입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중국공산당의 행위들의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결과들은 파괴적이었는데, 자신들이 갚아 나갈 아파트들을 결코 가질 수 없을 중국 시민들에게 특히 그랬다. 이 사례는 중국공산당이 전형적인 스탈린주의적 방식으로 한쪽 극단에서 다른 쪽 극단으로 갈지자 행보를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이 중국공산당이 시장 앞에서 무력함을 보여주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한번 더, 이들 행위들은 중국공산당과 미국정부 사이의 차이를 보여준다. 전자의 경우, 정치적 불안정성으로 귀결될 수도 있을 첨예한 위기를 피하기 위하여 국가가 스스로 투기 거품을 터뜨렸다. 미국의 사례에서는, 정부는 주택거품이 가능한 길게 가도록 유지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고, 현재는 정부가 주식시장에 대하여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 이것들은 모두가 사실들이다. 그러나 각각의 국가가 근본적으로 다른 법칙들에 따라서 행동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않고는, 그것들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중국경제를 이해함에 있어서 어려운 부분은 외국 투자를 끌어들이고 자기 자신의 노동력에 대한 규율을 세우려고 중국경제에 시장경제라는 외양을 부여하기 위하여 중국공산당이 수십 년 동안 열심해 일해 왔다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국가소유 기업들을 부분적으로 사유화했고, 사유화된 기업들에 “독립적인” 이사회들을 부여했으며, 사적 자본가들이 수억 달러짜리 기업들을 건설하도록 하는 등의 일을 했다. 그러나 이런 자유화의 뒤에서, 중국공산당은 공기업들과 사기업들 모두에 대하여 강력한 통제력을 유지했다. 여기에 비추어 볼 때, 문제의 핵심은 기업이 공식적으로 사기업인지 공기업인지 여부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다. 핵심은 모든 기업들이 중국공산당의 정치적 필요요건들에 부합되어야만 했다는 것이다. 이 정치적 통제는 중앙조직부(COD)와 같은 기구들에 의하여 보장되는데, 중앙조직부는 나라에 있는 사실상 모든 중요한 자리를 직접 임명한다. 맥그래고르는 (이런 일이 미국에서 벌어진다면 있을 수 있는) 가정적 비교를 아래와 같이 제시한다:
“미국에 있는 비슷한 부서가 미국 전체 내각, 주지사들과 부주지사들, 주요 도시들의 시장들, 모든 연방 규제기관들의 수장들, GE, 액손 모빌, 월마트 그리고 나머지 약 50대 기업들의 최고경영자들, 대법원의 재판관들, 뉴욕타임즈, 월스트리트 저널, 그리고 워싱턴 포스트 들의 편집자들, TV 네트워크들과 케이블 방송국들의 수장들, 예일과 하바드 그리고 다른 큰 대학들의 총장들, 그리고 브루킹스 연구소와 헤리티지 재단과 같은 씽크탱크의 수장들에 대한 지명을 감독한다.”
중국공산당에 의한 통제는 이윤이라는 동기에 따르지 않는다. 사실은, 중국공산당의 통제는 이윤이라는 동기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들과 직접적으로 충돌한다. 예를 들면, 2004년에 COD는 경고도 없이 중국의 3대 텔레콤 기업들에 있는 고위경영자들에 대하여 서로 다른 회사로의 이동을 결정했는데, 이들 기업들은 서로 경쟁하고 있었고 서구 주식시장의 원칙들을 따르게 되어 있었다. 경쟁하는 회사들의 최고경영자들을 순환시키는 것은 자본주의적 경쟁의 가장 기본적인 법칙들을 위반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미국 정부가 저커버그가 테슬라를, 그리고 머스크가 메타를 책임지게 결정하는 것과 같다. 중국공산당은 가격전쟁들을 억제하고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하여 이런 술책을 부렸다. 어떤 자본주의 국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이것이 진정 시장이 국가에 명령하는 조건들인가?
중국에서 자본주의 관계들의 만연을 보여주기 위하여 만들어질 수 있는 모든 통계들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사실은 자본가계급이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이 지휘한다. 중국에서의 자본주의적 관계들의 거대한 성장은 중국공산당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자본가들과 연합하여 행동해 온 결과이다. 하지만 이것이 중국공산당의 이해관계가 자본가계급의 이해관계와 같다거나 중국공산당의 정책들이 자본주의적 이해관계에 의하여 주로 안내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진실은 이렇다. 중국공산당 관료집단은 (외국과 국내) 자본의 압력들과 노동계급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하는 조정자의 지위를 계속해서 차지하고 있다. 그러한 관계로, 관료집단은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이들 양쪽 세력들에 대하여 국가기구를 휘둘러야만 한다.
6) 보나파르티즘
중국공산당이 중국에 있는 자본가들에게 가하는 강제가 무엇이건, 이것은 다른 어떤 보나파르트 정권과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 표준적인 주장이다. 2017년에, 사우디 아라비아의 황태자 모하마드 빈 살만(MBS)이 수백 명의 사우디 자본가들 (대개는 친척들)을 물러나게 하고 그들로부터 수십억 달러를 압류했다. 2003년에,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당시 러시아 최고의 부자였던 그의 경쟁자 미하일 코도르코프스키를 사기와 횡령을 이유로 시베리아에 있는 감옥에 보냈다. 이것들이 정규적으로 자본가들을 숙청하는, 혹은 위에서 들었던 몇 가지 예들의 중국공산당과 어떻게 다른가? 이것들이 어떻게 다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특별히 각각의 정권과 정권의 국내 자본가계급과의 관계에 관하여 살펴보는 것이 필수적이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중동에서 반동의 기지로서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하여 2차 세계대전 이래로 미국과의 군사동맹에 의존해 온 절대왕정이다.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왕족이 기본적으로 자본가계급이기도 하다. 2017년의 유명한 사건은 중세를 현대로 옮겨 놓은 것이라 할만한 왕조 내부의 불화였다. MBS가 자기 자신의 가족을 강탈했던 목적은 원칙적으로 왕조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함이었는데, 이것은 사우디 아라비아 자본가계급의 봉건적 성격으로부터 도출되는 “정상적인” 기능이다. 러시아에서는, 조폭 소수 지배집단 사이의 난장판의 폭력적 불화라는 상황에서 푸틴이 권력에 올랐다. 그의 정부의 보나파르트적 성격은 반혁명 이후 러시아에서 긴장을 억제할 수 있는 조정자의 필요성을 반영했다. 푸틴이 전열에서 이탈한 소수지배집단들의 특정 개별인자들에 대하여 자신의 권위를 과시해야만 했던 것은 이런 상황에서였다.
두 경우 모두에서, 보나파르트적 탄압의 방책들은 자본주의 정권들의 안정을 유지하는 것에 복무했다. 중국에서는, 정권의 보나파르트적 성격이 매우 다르다. 1949년 이후, 중국공산당의 권력은 자본가계급을 분쇄했던 노동자국가에 대한 관료적 통제력에 기초하여 세워졌다. 혁명적 국제주의 강령에 반대했던 중국공산당은 경제의 후진적 성격과 노동계급과 농민으로부터의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요구들, 그리고 세계 제국주의로부터의 적대적 압력 사이에서 스스로가 항상적으로 압착되어 있었다. 90년대에 스탈린주의가 전면적으로 붕괴하면서, 중국공산당은 자본가들과 함께 바람이 부는 곳으로 더욱 힘차게 기대는 것을 선택했다. 국제적 상황과 국내의 상황이 바뀌었지만 정권 자체는 바뀌지 않았다.
중국공산당의 보나파르트적 성격은 여전히 근본적으로 똑같은 계급세력들로부터 나온다. 사우디 아라비아와 러시아와는 달리, 중국의 자본가계급은 정권의 기초가 아니라 경쟁자이다. 많은 자본가들이 중국공산당 당원이나 최고위층 관료들과 관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진실이다. 계급적대들은 결혼이나 직위들을 통해서 극복될 수 없는데, 이것은 프랑스의 귀족으로부터 힘들게 배운 교훈이다.
그들의 정권들의 보나파르트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MBS도 푸틴도 시진핑도 그들의 권력이 의존하고 있는 사회적 이해관계를 초월할 수 없다: 사우디 왕조에게는 왕조적 이해관계, 푸틴에게는 소수 지배층의 이해관계, 그리고 시진핑에게는 관료적 이해관계. 앞의 2가지 경우에는, 지배층의 권력이 자본가계급에 의존한다. 자본가들의 근본적인 이해관계를 공격하는 것은 정권의 성격 바로 그것에 모순될 것이다. 중국공산당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충분한 외부적 내부적 압력하에서라면, 중국공산당은 자본가계급을 몰수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자본가계급에 대한 몰수는 엄청난 혼란을 초래하게 될 것이고, 이것은 중국공산당이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은 초기에 자본가계급에 대한 몰수를 해왔지만, 1949년 이전의 모택동은 자본가들을 몰수 싶어하지 않았다는 점을 잊지 말도록 하자.
정권들을 향한 자본가들의 행동을 살펴봄으로써 이 세가지 정권들의 다른 계급적 기초를 더욱 볼 수 있다. MBS의 폭정에도 불구하고, 백만장자들과 억만장자들은 불꽃으로 날아드는 나방들처럼 사우디 아라비아에 모여든다. 러시아에서는,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과 서구의 경제제재들의 발생이 의미있는 수의 부유한 개인의 떠남으로 귀결되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소수지배층은 정권을 지지하기 위하여 집결해왔다. 2022년 이래로, 억만장자들은 500억 달러의 외국에 있는 자산들을 러시아로 송금해왔다. 이것은 정권이 서구의 적의에 직면하여 의존할 수 있는 지주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우리는 정반대를 발견한다. 자본가들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떼를 지어 이민을 가려할 서구보다도 정권을 더 두려워한다. 정권이 그런 이민을 엄격하게 제한함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매년 자본가들이 떠나는 나라 목록에서 꼭대기에 있다. 헨리와 파트너스 이민회사에 따르면, 중국을 떠나는 고도의 순가치를 가지는 개인들의 숫자가 팬데믹이 끝난 이래 매년 증가해왔는데, 2024년 현재까지 15200명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모택동과 시장들 (2022년)에서 크리스토퍼 마퀴스와 쿠뉘얀 퀴아오는 “중국 기업가들의 4분의 1보다 많은 수가 그들이 부자가 된 이후 나라를 떠났으며, 보고서들은 남아 있는 기업들가의 거의 절반이 나라를 떠날 생각을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중국공산당이 중국에 있는 자본가들의 이해관계를 방어하는 것에 근본적으로 전념한다면, 왜 사실이 그러한 것인가? 다른 독재들 하에 있는 자본가들은 왜 그런 식으로 자신들의 정부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일까?
7) 재산권
중국을 자본주의로 여기는 “트로츠키주의자들”에 의하여 사용되는 궁극적인 주장은 관료집단이 스스로를 자본가계급으로 변형시켰다는 것이다. 배반당한 혁명(1936년)을 인용하면서, 그들은 아래와 같은 트로츠키의 주장을 의기양양하게 가리킨다:
“만약 특권들이 자신의 자식들에게로 전해지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절반의 가치만을 가진다. 그러나 유언의 권리는 재산권과 분리할 수가 없다. 기업의 관리자가 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주식소유주가 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 결정적인 영역에서 관료집단의 승리는 관료집단의 새로운 소유계급으로의 변환을 의미할 것이다.”
우리의 비평가들은 중국공산당 관리들과 그들의 친척들이 주식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관료집단은 스스로를 자본가계급으로 변형시켜왔다고 결론을 짓는다. 이것이 피상적 수준에서는 진실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들 재산권들의 실제 의미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중화인민공화국 수정헌법은 “시민들의 법적인 사적재산권은 불가침”이며, “국가는 법의 조항들에 따라서 사유재산을 소유하고 상속할 수 있는 시민들의 권리를 보호해주어야 할 것이다”고 언명한다. 하지만, 이것이 이 문제를 마무리하는 것은 아니다. 1936년 1월 1일 편지에서, 트로츠키는 “현실을 소위 재산의 형태들, 즉 법적 허구들”과 구별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했다. 사적소유에 대한 공식적인 존중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있는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추가 검토를 한다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우선, 헌법은 “국가는 사회주의 법체제의 통일성과 신성함을 보호해야 할 것”임을 또한 언명한다. 우리는 이것이 어떻게 사적소유에 대한 방어와 양립할 수 있는 지를 스탈린주의 학자들에게 맡겨야 할 것이다. 그러나 또한 어떤 자존감을 가진 자본가라도 놀라 눈을 치뜨게 하는 것이 “사회주의적 공공재산은 신성하고 불가침이다”뿐만 아니라 도시나 시골 어디에서라도 사적 개인들의 어떠한 토지라도 소유가 불가능함과 같은 언명들이다. 만약 이것이 자본주의라면, 이것은 분명히 매우 이상한 자본주의이다.
그러나 트로츠키의 충고를 따라 공식적인 법적 문구들을 넘어서 보자. 사적소유권의 기본적인 한 기준은 어떤 사람이 소유한 재산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것이 재산이 사적인 것으로 존재하는 핵심이다. 중국에 있는 자본가들이 자신들의 자산들을 통제하는지가 문제이다. 그렇다. 그러나 오로지 그들이 중국공산당의 바램에 호응하는 방식으로 자산들을 사용한다면.
개별 자본가들이 국가소유 기업들을 포함하여 기업들의 주식을 소유는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사업들에 대한 궁극적인 통제력은 가지고 있지 않다. 중국공산당이 어떻게 최상위 최고경영자들의 지명을 효과적으로 감독하는지에 대하여 이미 살펴보았다. 그러나 당의 통제는 더욱 나아간다. 문서상으로는 사적인 재산이 실제로는 사적인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중국공산당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는 수없이 많은 사례들이 있다. 예를 들면, 중국은 스톡옵션들을 가지고 국가소유 기업들의 최상위 최고경영자들에게 포상하면서 서구를 흉내 냈다. 그러나 이들 최고경영자들이 이들 주식들을 팔려고 결정할 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도록 되어 있음을 이해하도록 만들어졌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 열대우림의 작은 한 조각을 소유할 수 있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회사를 소유했다 – 그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격증을 벽에 걸어둘 수 있고, 거기까지이다.
물론 가장 유명한 사례가 소유주 잭 마가 당을 비난한 이후 중국공산당이 앤트 그룹의 주식공모를 중단시킨 것이다. 앤트의 모기업은 수십억 달러의 손실을 봤고, 잭 마는 수년 동안 공공의 시선으로부터 사라졌다. 그 추문에 뒤이어, 이 그룹집단은 “구조조정”을 거쳤는데, 잭 마의 통제력이 53.46%에서 고작 6.2%로 떨어졌다. 분명히 그의 변호사들은 사적소유가 중국에서는 불가침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잊었을 것이다.
재산관계들에 있어서의 그러한 갑작스러운 변경들이 이 사례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2004년에, 하이얼의 경영간부들이 자신들의 회사소유를 늘리려고 시도했다. 이것이 추문을 낳은 후, 정부는 사전공지도 없이 하이얼은 더 이상 사유가 아니라 국가소유라고 결정했다. 하이얼은 당장에 국유화되었고, 그리로 나서, 수 년의 논쟁 후에는, 마찬가지로 갑작스럽게 사적기업으로 뒤바뀌었다.
중국의 사적소유의 “유연한” 성격은 위기의 시기에 가장 분명하게 보여진다. 코비드 팬데믹 동안, 중국공산당은 어떤 자본주의 국가도 훨씬 넘어서는 방식과 규모로 자원들을 결집시킬 수 있었다. 팬데믹은 모든 곳을 때렸고, 정부들은 모든 종류의 방식들로 반응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나라들은, 그들의 방책들이 아무리 가혹하다 할지라도, 소유의 사적성격에 의하여 제한을 받았다. 그들은 매우 한정된 방식으로 재화와 용역들의 생산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에 반해서, 중국은 정부에 의하여 결정된 목표들을 성취하기 위하여 사회의 모든 것을 동원할 수 있었다. 이것은 단순히 중국이 권위주의적 정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라 (팬데믹 동안에는 모든 정부가 권위주의적이었다), 사적 자본가의 이해관계를 무시하고 계획에 따라서 기능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심의 여지 없이, 중국의 현재 상황은 소련의 상황과 같지 않다. 사적재산을 소유한 자본가계급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 사적소유라는 현실은 매우 모순적이다. 그렇지만, 하나의 계급으로서의 자본가들은 그들의 권리들을 아직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완전한 경제적 혹은 정치적 통제력을 가지고 있지 않는데, 이것은 나라의 무장력들이 그들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공산당 관료집단에게 충성하기 때문이다. 자본가계급이 중국에서 자신의 독재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현실이 바뀌어야만 한다 – 중국공산당의 권력이 분쇄되어야만 한다.
8) 반혁명 혹은 정치혁명?
중국에서 반혁명은 어떤 모습일까? 소련과 유고슬라비아의 사례들이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 내전은 가능성이 유력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자본가들이 경제에 대한 제한없는 통제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국가소유 기업들은 훨씬 더 완전한 정도로 사유화될 것이다. 정부는 은행 부문에 대한 통제력을 잃을 것이다. 중국 시장을 제국주의 금융에 훨씬 더 의존적이게 만들면서, 자본의 흐름들이 자유화 될 것이다. 구조조정 계획들 속에서 의심의 여지없이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 이번에는, 이것은 경제가 급속하게 발전하는 와중에서가 아니라 사회적 붕괴의 상황에서 일 것이다. 중국과 타이완이 국민당의 전략적 목표인 반동적 자본주의적 기초 위에 재통일될 가능성 또한 매우 높다. 이런 전개들의 어떤 것이라도 개선된 민주주의적 권리나 시민의 자유들로 귀결될 것이라고 생각할 근거는 없다.
중국에서의 반혁명의 국제적 충격은 마찬가지로 재앙적일 것이다. 소련의 붕괴에서와 마찬가지로, 중화인민공화국의 종말은 미국과 미국의 동맹들로 하여금 다시 한번 무제한적으로 세계 전역에 자신들의 힘을 투사하도록 허용하면서 그들의 지위를 강화해 줄 것이다. 게다가, 자본주의 복구 속에서 발생하게 될 거대한 생산력들의 파괴는 지구 전역에서 생활수준을 하락시킬 것이다.
오늘날 중국에 방어할 어떠한 것이라도 있음을 부인함으로써, 중국이 자본주의라고 주장하는 소위 맑스주의자들은 이들 재앙적인 결과들을 향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그렇게 하면서, 그들은 1980년대와 90년대 대부분의 좌익이 따라갔던 배신의 길을 쫓는다. 폴란드로부터 동독과 소련에 이르기까지, 좌익은 반혁명을 응원했다. 그들은 아무것도 배우지 않아왔고, 오늘 그들은 홍콩 민주주의 항의들과 같은 명시적으로 친제국주의적 운동들을 지지하면서 중국에 대하여 똑같은 짓을 한다. 중국의 반체제인사들을 자유주의 민주주의적 환상들로부터 분리하고, 그들을 공산주의 혁명가들로 훈련하기는커녕, 이들 그룹들은 중국 사회에 반혁명적 경향들을 강화한다.
다행히도, 중화인민공화국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결정적인 요소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중국 노동자계급의 행동들일 것이다. 그러나 반혁명을 패배시키기 위해서는, 중국 노동자계급이 정치적 임무들을 이해해야만 한다. 우선, 이것은 1949년 혁명의 성취들은 중국공산당에 대한 혁명적 타도로만 지켜낼 수 있음을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정치혁명일 것이다. 자본주의 나라에서의 혁명과는 달리, 국가기구는 완전히 분쇄되는 것이 아니라, 전면적으로 숙정되어 노동계급의 정치적 통제 아래로 옮겨져야 할 필요가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퇴행과 광범위한 자본주의 영향력의 정도로 볼 때, 정치혁명은 급진적이고 발작적인 변형이 될 것이다. 중심적인 임무는 자본주의 산업에 대한 몰수일 것이다. 의심의 여지 없이 자본가들은 저항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국가가 자신들의 통제력 아래 있지 않다는 사실에 의하여 좌절할 것이다.
천안문 사태가 보여준 것은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충격 하에서, 최고 명령권자들을 포함하여 중국인민해방군의 전체 전투부대들이 명령을 거부하면서 국가기구 그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음이다. 강력한 사회적 충돌에 직면하여,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공중에 매달려 붕괴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중국에서건, 동독이나 헝가리에서건, 다양한 정치혁명들의 발발들 모두가 기형화된 노동자국가에서의 노동계급 봉기가 국가기구의 대부분을 자신의 쪽으로 가져 올 실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국에서는 이런 결과가 자본가들에 대한 몰수를 간단한 행정적 업무로 만들 것이다. 그러한 국가의 균열은 어떠한 자본주의 나라에서도 불가능하며 정치혁명과 사회혁명을 구분하는 핵심요소이다.
결론
우리는 중국이 어떻게 자본주의도 아니고 제국주의도 아님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 문제를 어떤 식으로 바라보건 간에, 우리가 매우 독특한 현상을 살펴보고 있음은 분명하다. 국가통제와 자본주의를 융합하면서, 중국은 인류역사상 비교가 불가능한 속도와 규모로 발전할 수 있어왔다. 부르주아지 사상가들은 이것을 자유무역 자본주의라는 미국의 세계체제의 승리로 해석한다. 중국공산당 지지자들은 이것을 “중국적 특색들을 가지는 사회주의”의 승리로 해석한다. 중국이 자본주의-제국주의 나라라고 생각하는 “맑스주의자들”로 말할 것 같으면, 중화인민공화국의 엄청난 성취들은 경시되고 부정될 수는 있지만, 설명될 수는 없다.
맑스주의자들로서 중국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2차 세계대전과 냉전의 종결에 뒤이든 매우 특이한 조건들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레닌과 트로츠키는 하나의 열강의 압도적인 헤게모니로 인하여 주요 제국주의자들이 통일되었던 상황을 직면하지 않았다. 그들은 또한 단 하나의 초강대국이 있는 세상에 직면하지도 않았다. 레닌과 트로츠키를 인용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들의 분석과 강령을 그러한 고유한 현실들로 확장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근본적으로, 소비에트 이후 세계의 독창성이 현재의 세계정세와 중국의 발전의 독창성을 설명해준다.
중국의 거대한 발전은 제국주의나 스탈린주의의 승리가 아니라 독특하고 유일한 조건들의 산물이다. 1989년 천안문 운동의 분쇄는 한동안 정치혁명과 반혁명 모두를 향한 문을 닫았다. 그러므로, 중국은 상대적으로 온순한 국제적 상황을 맞이하여 노동자국가로서 손상을 받지 않은 채 90년대 초부터 부상했다.
표면적으로는, 중국공산당은 악마와의 거래를 통하여 혜택을 보아 온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높은 성장과 자본주의와의 공존은 오직 정권에 대한 외부적 압력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뿐이었다. 국제상황이 바뀌고, 미국이 중국과 대적하면서, 성장은 정체되고 내부 긴장들은 증가하고 있다. 계급투쟁을 지우기 위한 중국공산당의 최고의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과 자본가들 사이의 멈출 수 없는 충돌이 정치적 장면의 최전선에서 다시 한번 폭발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중국 스탈린주의가 노동자국가를 얼마나 심각하게 썩혀왔는지를 보게 될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이 반혁명으로부터 구원될 수 있는지 여부는 노동계급의 선두에 서 있는 정치적 지도부에 의하여 결정될 것이다. 만약 친자본주의 세력들이 지도부를 장악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중화인민공화국은 운명을 다할 것이다. 만약, 어떤 형태로건, 스탈린주의를 달래준다면, 역시 중화인민공화국은 운명을 다할 것이다. 승리를 향한 유일한 길은 제국주의에 가차없이 반대하는, 혁명의 사회적 성과들을 방어하는,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을 타도하는, 그리고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국제 노동계급 동맹을 건설하는 제4 인터내셔널의 길이다. 중국의 특이한 발전이 국제적인 계급투쟁의 산물이었던 것처럼, 중국의 미래 운명 또한 세계의 노동자들과의 단결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이것이 당면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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