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R Code
https://iclfi.org/pubs/icl-ko/2025-china-pt1
The Class Nature of China (영어), Spartacist (English edition) 69 로부터 번역됨

이 문서는 2024년 8월 스파르타시스트 69 / 영어판 기사의 서문과1부에 대한 번역이다.

중국은 무엇인가? 지배계급들로부터 극좌까지, 이 간단한 것처럼 보이는 문제에 대해서 의견이 갈린다. 미국의 자본가인 래이 달리오로 말할 것 같으면, 그 정권은 국가 자본주의의 하나인데, “몇 년 내에 자본주의와 자본시장들의 발전이 미국에서보다 중국에서 더 지지받을 것이다.” 중국공산당 총서기인 시진핑은 그러한 관점들을 직접적으로 논박한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길을 ‘사회적 자본주의’로, 다른 사람들은 ‘국가 자본주의’로, 또 다른 사람들은 ‘테크노크라시 자본주의’라고 불러왔다. 이것들은 모두 완전히 틀렸다. 우리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가 사회주의라고 답하는데, 이렇게 답함으로써, 이것은 개혁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회주의적 길 – 우리의 길, 우리의 이론, 우리의 체제 - 를 고수함을 의미한다.”

“중국 특색들의 사회주의 건설에 관하여” (2013년 1월 5일)

두 관점 모두가 서로 구분되는 이해관계를 반영한다: 달리오는 외국 자본투자자의 이해, 그리고 시진핑은 중국공산당 정권의 이해관계. 그렇지만, 노동자운동은 어찌되는가? 국제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로부터 출발하면서는, 사람들은 어떻게 중국의 성격을 이해해야 하는가?

이것이 오늘날 좌익에게 가장 중요하고 갈라져있는 문제들 중의 하나이다. 중국공산당의 범죄들에 눈을 감고는, 중국을 본받아야 할 사회주의 모델로 여기는 일부의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국제 맑스주의 운동에서 소수 관점으로 남아있다. 대부분의 조직들이 중국은 자본주의 그리고/혹은 제국주의 열강이라고 주장한다. 트로츠키주의자임을 주장하는 정당들 중에서, 국제사회주의대안(ISA), 혁명적 공산주의 인터내셔널(RCI – 구 IMT), 트로츠키주의 분파, 그리고 더 많은 조직들이 이 관점을 고수한다. 전통적인 스탈린주의자들인 그리스 KKE와 대부분의 중국 외부의 모택동주의자들, 예를 들면 독일의 MLPD와 필리핀의 시손 추종자들이 같은 입장이다.

이 문서가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 이 경향이다. 중국이 자본주의이고 제국주의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중국공산당에 대한 실행 가능한 정치적 대안을 제공하기는커녕, 단순히 미국과 미국의 동맹들을 달래고 있음을 우리는 보여줄 것이다. 동원된 주장들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그들은 국가와 제국주의에 관한 기본적인 맑스주의적 원칙들을 거부한다. 시작을 위하여, 우리는 중국은 왜 제국주의가 아닌지를 설명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중대한 자본주의적 침투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기형화된 노동자국가의 기본적인 특색을 간직하고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전개될 근본적인 주장은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를 밀고 나가는 것은 미국에 의하여 지배되는 세계질서에 대한 반대와 함께 시작되어야만 한다. 이것은 남아 있는 1949년 중국혁명의 성취들에 대한 방어를 필요로 하지만, 또한 중국을 재앙으로 이끌고 있는 전략과 정책들을 가진 중국공산당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에 반대하는 정치혁명을 위한 투쟁을 필요로 한다.

1부: 중국은 제국주의가 아니다

1) 맑스주의 대 경험주의

“제국주의”라는 용어는 모든 종류의 상황들에서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 의하여 사용된다. 중국이 제국주의라는 주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자유주의적 아우성을 제쳐두고 맑스주의적 관점으로부터 이 쟁점에 접근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어려움은 제국주의를 정의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이 레닌의 관점에 동의할 것이다:

“독점들과 금융자본의 지배가 확립이 되어 있으며; 자본수출이 확연한 중요성을 획득해왔고; 국제 트러스트들 사이에서의 세계 분할이 시작되었으며, 가장 거대한 자본주의 열강들 사이에서 지구의 모든 영토들에 대한 분할이 완료되어 있는 발전의 단계에 있는 자본주의.”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 (1916년)

하지만, 오늘날 어떤 나라들이 제국주의인지를 결정하는 것으로 나아갈 때에 논란이 제기된다. 일부는 중국, 브라질, 그리고 심지어 그리스를 미국과 연계시키는 한편 다른 이들은 일본과 독일이 거대 열강들임을 아예 부정한다.

의견이 이렇게 폭넓게 다양한 것은 이것이 강령의 문제인 것만큼이나 방법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도덕들이나 추상적인 이상들로부터가 아니라 제국주의의 구체적인 역사적 발전, 즉 변증법적 유물론을 가지고 제국주의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예를 들면, 맑스가 발전시킨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분석은 자본주의가 어떻게 선행했던 봉건주의 질서의 계급투쟁으로부터 뚜렷하게 다른 생산양식으로서 등장했는지를 살핀다. 제국주의에도 같은 방법의 접근이 있어야만 한다: 지난 세기의 계급투쟁을 통하여 진화해 온, 개별 국가의 자리가 전체의 부분으로서 딱 들어맞는, 살아 있는 체제로서.

이것은 좌익들이 이용하는 방법이 아니다. 그들이 어떻게 문제에 접근하는지에 관한 천박하지만 대표적인 예가 ISA 기사의 헤드라인 “중국은 제국주의인가?”에서 발견될 수 있다 (chinaworker.info, 2022년 1월 14일).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하여, 그 기사는 중국이 레닌의 정의에 나오는 다양한 포인트들과 일치하는지를 살펴본다. 중국은 독점들을 가지고 있는가? 중국은 금융자본을 수출하는가? 중국은 대규모 군대를 보유하고 있는가? 일단 모든 체크리스트에 표시가 되면, 중국은 제국주의로 간주된다.

이것은 맑스주의가 아니라 경험주의이다. 세계체제 내부에서 중국의 발전을 평가하는 대신, ISA는 경험적 증거 (군대의 크기, 자본수출의 양, 등)를 추상적 규범 (레닌의 정의)과 비교함으로써 단순히 중국의 성격을 판단한다. 생물학적 측면에서, 이것은 생물들의 진화는 무시한 채 육체적 특징만을 평가하면서 종들을 분류하는 것과 같다. 이 방법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이 방법이, 양질전화를 결정함에 있어서 어떤 특색들의 집합이 결정적인 것인지를 결코 객관적으로 결정하지 않는, 거의 전적으로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이 접근으로는, 특정 나라가 제국주의 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하나의 사실들의 집합이 선택될 수 있는데, 다른 사실들의 선택으로는 그 정반대를 증명할 수 있다.

누가 제국주의 클럽에 있는지를 두고 벌이는 그런 골치 아프게 따지는 논쟁들 사이로 길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제국주의가 역사적으로 구체적으로 진화해왔는지를 평가함으로써 문제 전체에 접근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 체제 안에서 중국의 특정한 위치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종합적인 세계체제의 진화 안에서 중국 자신의 진화를 자리매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오직 이 방법으로만, 우리는 문제에 대한 맑스주의적 답을 얻을 수 있다.

2) 미국 세계질서와 중국

현대제국주의 체제에 대한 모든 분석의 시작점은 1945년 이어야만 한다. 인류 최대의 대학살로부터 미국은 지배적인 제국주의 열강으로 등장했다. 현재의 세계질서의 핵심적인 기둥들이 그런 상황에서 확립되었다.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미국 달러, 유엔, IMF, 나토, 그리고 유럽 석탄과 철강 커뮤니티 (유럽연합의 조상) 모두가 소련에 대적하고, 미국을 위한 과대한 특권들을 소중히 하기 위하여 고안되었다. 다른 자본주의 열강들 – 영국, 프랑스, 독일, 그리고 일본 – 은 미국을 따르는 것 외에는 거의 선택지가 없었다. 구 식민주의 제국들은 세계정치에서 독립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급격하게 멈추었고, 대신 그들의 지위와 특권들은 미국과 그들의 관계들에 의존하게 되었다.

중국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한세기 동안의 제국주의적 약탈이 중국을 신식민지 상태로 만들었다. 중국이 얻었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자리는 단순히 중국이 일본에 대항하는 미국의 동맹이라는 것을 반영했다. 그러나, 이 관계는 모택동의 농민군이 장개석의 민족주의 정권을 패배시켰던, 그래서 중국 부르주아지 계급들의 타이완으로의 도주, 제국주의의 멍에로부터 중국의 해방, 그리고 노동자국가의 수립으로 귀결되었던 1949년에 급진적으로 바뀌었다. 중국혁명은 미국에 대한 수치스러운 타격이었고, 냉전의 악화로 직접적으로 귀결되었다. 공산주의의 확산을 중단시키고 “또 다른 중국”을 피하기 위하여, 미국은 매카시 마녀사냥을 시작했고 한반도와 후에는 베트남에 군사적으로 개입했다. 이 기간 동안, 미국과 중국은 공산주의, 식민지 투쟁들, 그리고 소련을 둘러싼 충돌로 정의되는 세계질서의 양 극에 서 있었다.

닉슨과 모택동이 소련에 대항하는 조약을 체결했던 1972년에 두 나라 사이의 관계는 다시 급격하게 변했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패배하고 있으면서, 미국은 소련과 중국 사이에 부상해왔던 분쟁을 활용함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강화하려고 애썼다. 등소평이 모택동을 인수하고 경제 자유화라는 “개혁과 개방”의 길을 시작하면서 중국과 미국의 관계는 더욱 개선되었다. 하지만, 양자관계는 매우 기이한 성격을 가졌다. 두 나라들은 소련을 침식하기 위하여 함께 일했지만, 그들의 사회적 정권들은 근본적으로 적대적인 채로 였다.

1991년, 소련의 붕괴는 세계 정세에서의 극적인 변화를 의미했고 중국과 서구 사이의 관계들을 위한 새로운 시대를 예고했다. 소련이 사라진 상태에서, 미국은 도전받지 않는 세계열강으로 나섰다. 미국의 패권과 중국 시장의 개방은 국제화라고 알려진 외국 투자와 무역에서의 대규모 확대를 위한 조건을 만들어냈다. 외국 기업들이 값싼 노동력, 정부 계획, 그리고 중국공산당이 보장하는 노동평화에 의지할 수 있었던 중국은 세계의 산업중심이 되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중국에서의 시장자유화는 엄청난 기회를 의미했다. 게다가 자유민주주의가 “냉전에서 승리”했었기 때문에, 중국 공산주의는 더 이상 위협이 아니라, 단순히 서구로의 경제적 통합을 통하여 극복될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이런 감정은 “WTO[국제무역기구] 가입으로 중국은 더 많은 우리의 상품들을 수입하는 것에 동의하고 있으며, 민주주의의 가장 축복받은 가치들 중의 하나인 경제적 자유를 수입하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 그리고 개인들이 힘을 가질 때 … 그들의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그들은 더 큰 발언권을 요구할 것이다”(2000년 3월 9일) 라고 생각했던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에 의하여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중국 공산당의 입장에서 새로운 시대는 위험으로 가득했다. 소련의 붕괴가 만약 당이 나라에 대한 장악력을 잃는다면 무엇이 벌어질지에 대한 경고로 서 있었다. 동시에 1989년 천안문 봉기는 대중들이 들썩이고 있었으며 더 좋은 조건들을 요구했음을 보여주었다. 교착상태는 당을 시장 자유화라는 그의 아젠다 뒤로 굳건히 두기 위한 운동이었던1992년 등소평의 “남부 시찰”로 깨졌다. 충분한 경제성장이 정치적 불만을 약화시키고 정권의 권력을 강화해줄 것이라는 것이 그 발상이었다.

이것은 성공적이었음이 증명되었다. 미국의 예상들과는 반대로, 중국의 경제적 통합은 중국공산당의 몰락이나 국가독점들의 붕괴로 귀결되지 않았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중국공산당과 외국 자본가들의 수렴하던 이해관계가 정권에 대한 전체적인 압력을 줄여주었고, 경제에 대한 국가통제를 자유화된 자본흐름들과 무역확대를 융합함으로써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중국이 발전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런 동역학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중국의 폭발적 성장이 미국 경제체제로의 통합을 통하여 일어났지 통합에 대한 반대를 통해서가 아니었다. 모든 스탈린주의 정권들처럼, 중국의 외교정책은 제국주의와의 평화공존의 성취라는 목적에 의하여 계속해서 이끌려왔다. 사실, 오늘날까지, 중국은 미국 패권의 기본적인 기둥들 중 어느 것에도 도전해오지 않았다. 중국은 WTO에 가입했고, IMF와 유엔을 지지하고, 여전히 미국 달러로 압도적으로 거래하고 투자한다. 결정적으로, 중국은 세계의 군사 집행자로서의 미국을 대체하기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아왔다.

3) 미국 헤게모니의 쇠퇴

오늘날 세계정세의 핵심적인 모순은 미국 헤게모니가 중국과 기타 제국주의에 억압 당하는 나라들이 상당한 정도로 성장할 수 있는 조건들을 창출했던 한편 이것이 이번에는 미국의 지위를 약화시켜왔다는 것이다. 미국 지배계급은 이것을 이해하며, 자기 자신의 자유민주주의적 세계체제의 주요한 기둥들을 점점 더 침식하고 있다. 2015년 자신의 첫번째 대통령 도전을 시작하기 위하여 아래와 같이 말하던 도널드 트럼프가 이런 이행의 전형이었다:

“바로 지금, 이것을 생각해 보십시요: 우리는 중국에 1.3조 달러를 빚지고 있습니다. 일본에는 더 많은 빚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들어오고, 우리의 일자리들을 차지하고, 우리의 돈을 차지하고, 그리고 나서 우리에게 돈을 빌려주고, 우리는 그들에게 이자를 지불하고, 그리고 이제는 달러가 그들의 거래가 더욱 좋도록 상승합니다.

“우리의 지도자들이 얼마나 바보 같습니까? 이런 일이 발생하도록 허용하는 이들 정치인들이 얼마나 바보 같습니까? 그들이 얼마나 바보 같습니까?”

자유주의 질서가 어떻게 미국 자신에 대한 장애물이 되어가고 있는지를 상징하는 가운데, 워싱턴은 이스라엘에 대한 조사를 이유로 국제사법재판소에 대한 경제적 봉쇄를 위협하며, 유엔에 대한 재정원조 철회를 고려하며, 때때로 심지어 나토와 유엔에 반대하여 공개적으로 말한다. 중국공산당은 나름 국제화가 역사의 바꿀 수 없는 힘이며, 중국이 미국에 의하여 수립된 규칙들 속에서 발전을 지속할 수 있다고 여전히 믿는다. 우리는 중국은 자유무역과 국제법을 설교하는 반면, 미국과 유럽연합은 보호주의를 주창하고 그들 자신의 국제 규칙들을 무시하는 기괴한 상황 속에 우리가 있음을 깨닫는다.

종합적으로, 현재의 시대는 제국주의간 경쟁의 고전적 시대였던 1차 세계대전으로 귀결되었던 시대와는 매우 다르다. 당시에는, 프랑스, 영국, 그리고 러시아라는 기존 제국들이 공격적으로 자기 자신들의 식민지 제국들을 확장하고 있던 부상하던 제국주의 열강들 (독일, 일본, 그리고 미국)과 대결상태였다. 1900년대 초에는, 제국주의 체제가 분열되어 있었고, 새로운 그렇지만 이미 자리를 잡은 제국들의 팽창주의적 욕구로부터 불안정성이 나왔다.

1945년 이래, 제국주의 체제는 단결되어 있어 왔다. 오늘날, 미국이 지배하는 고도로 통합된 제국주의 카르텔이 다양한 지역 강국들의 부상으로 점점 더 쇠퇴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수십년 동안 미국과 미국의 동맹들에 의하여 포위공격 당해왔지만, 이제는 그들의 지역적 그리고 국내의 이해관계가 존중받을 것을 요구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세계체제의 안정성이 도전받지 않는 미국의 패권에 의존한다는 조건에서, 이들 상대적으로 온순한 야망들은 존재와 관련된 위협을 대변하며, 현 시대의 격동의 뒤에 있는 것들이다.

소비에트 이후 시대의 제국주의 체제 내에서의 중국의 발전을 이해한다면, 중국의 발전은 팽창적인 제국주의 경로를 어떤 식으로 건 따르지 않아왔다는 것이 분명한데, 최소한 팽창적인 제국주의 경로를 따르는 것은 미국의 경제질서로부터의 분리가 필요할 것이었다. 사실 소련보다 훨씬 더 큰 중국의 경제적 비중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현상유지에 압도적으로 집중했던 조용한 외교정책을 추구해왔음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심지어 훨씬 더 대결적인 전략을 따라왔던 러시아를 보더라도, 러시아가 공격적으로 팽창하기 보다는, 자신의 주변과 동맹들 (조지아, 우크라이나, 시리아)에 대한 미국의 계획들에 반응해오고 있음을 목격한다. 러시아는 미국에 도전해왔지만, 세계의 지도력을 두고 경쟁하지는 않는다. 요점은 세계정치가 제로섬 게임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제국주의 블록의 부상은 1945년 이래 세계를 지배해 온 제국주의 동맹에게 주요한 패배를 안기거나 이들의 분열 없이는 있을 수가 없다.

4) 평화로운 제국주의?

중국이 제국주의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하는 첫번째 실수는 새로운 제국주의 세계열강이 완전히 평화로운 방법들을 통하여 부상할 수 있다는 점을 사실로 상정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고대 로마제국에 대해서 말하고 있건 혹은 레닌이 서술했던 현재 제국주의 체제에 대해서 말하고 있건, 제국주의는 군사적 강제를 요구한다. 군국주의가 경제적 관계들의 산물이라는 사실이 어쨌든 군국주의를 선택적인 성격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착취는 오로지 힘을 통해서만 강요될 수 있다.

군사력의 결정적 중요성은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적 패권에 의하여 지난 30여 년 동안 어느 정도 가려져 있어왔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미국의 힘이 언뜻 보기에는 대체적으로 평화로운 방식을 통하여 기능하는 것처럼 보이는 고도로 통일된 세계경제를 위한 조건들을 창출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독일 혹은 인도의 억만장자들은 그들의 재산이 압수되거나 혹은 그들의 대부들이 취소될 것에 대한 걱정없이 자신들의 돈을 해외에 투자할 수 있다. 이것은 미국 군대가 전체 현재 제국주의 체제를 위한 집행자로서 복무해왔기 때문이다. 세계 전역의 자본가들에게 사적 소유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봉사의 대가로, 미국은 미국달러와 세계 금융자본의 핵심적인 센터들과 기구들에 대한 자신의 통제력을 통하여 잉여가치의 파격적인 몫을 챙긴다.

오늘날까지 세계경제의 안정성이 미국 군대에 의존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결정적이다. 미국 군대는 80개 나라들에 적어도 750개의 기지들을 가지고 있다. 미국과 미국의 동맹들은 파나마와 수에즈 운하들, 말라카, 지브롤타, 그리고 호르무즈 해협들과 같은 모든 중요한 바다의 관문들을 통제한다. 중국의 해상에서의 힘이 성장하고 있지만, 대서양과 인도양, 그리고 지중해와 마찬가지로 태평양은 압도적으로 미국의 호수로 남아 있다. 1945년 이래, 미국 군대는 200개가 넘은 해외 분쟁들에 개입해왔다. 개별적으로 따져보면, 이들 개입들 중 다수가 경제적 혹은 전략적 의미가 매우 작은 것처럼 보인다. 전체로서의 국제 체제를 둘러싼 안정을 지키기 위하여 복무하는 미국의 힘을 입증하는 것들로서 그러한 개입들을 봐야만 한다.

중국의 경제적 발전이 어떻게 미국 제국주의 체제의 핵심적인 기구들 내에서 완전히 이루어져 왔는지를 이미 보아왔다. 심지어 중국이 자본주의라 해도, 제국주의가 되기 위해서 중국은 미국 체제와 결별해야만 할 것이며 중국 자신의 군사력과 기구들을 통하여 자신의 전지구적인 경제적 이해관계를 보장해야만 할 것이다. 세계 정세를 잠깐만 살펴봐도 중국이 이런 방향으로 어떠한 진지한 발걸음들도 떼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실제로는 중국은 지난 40년 동안 (유엔 평화유지군은 제외하고) 해외 개입이 없었던 유일한 의미있는 군사력이다.

오늘날까지, 중국이 해외 투자를 하고 대부를 할 때, 중국 자신의 군사력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미국이 지배하는 기구들에 계속해서 의존한다. 앞서 설명한 이러한 핵심적인 속성이 없다면, 중국은 제국주의 열강으로 여겨질 수 없다. 반대로 주장하는 것은 평화주의적 색으로 제국주의를 칠하는 것이다. 그것은 세계의 나라들이 순전히 상업적 토양에서 초착취 당할 것을 받아들이며, 세계는 이미 완전히 평화적인 방식으로 열강들 사이에서 재분할 되었음을 의미할 것이다.

독일이나 일본과 같은 나라들은 어떠한가? 그들 또한 미국 군대에 의존한다. 이것이 그들은 제국주의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가? 아니다. 독일과 일본 모두는 패권을 두고(재앙적 결과들과 함께) 미국에 도전하려는 시도를 했었고 그들의 패배 이래 그들은 미국 체제의 동반자들이었다. 두 나라 모두는 미국과의 동맹이라는 함수로서 세계경제 안에서 특권적 지위들을 차지한다. 이것은 지난 수십년 동안의 깊은 경제적 통합에도 불구하고 항상 아웃사이더였던 중국과는 다르다.

5) 중국은 어떤 나라들을 억압하는가?

외국들에 대한 억압이 없는 제국주의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것은 의문을 제기한다: 중국은 어떤 나라들을 억압하는가? 중국의 정치적 정권은 자기 자신의 인민들에게 억압적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중국이 자기 자신의 국경들 내부에 있는 소수민족들을 억압한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그러나 만약 이것이 중국이 제국주의라는 모든 이유라면, 이라크와 스리랑카도 이 조건을 충족할 것이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자신들의 국경들 내부에 있는 소수민족들을 억압하며, 모든 나라의 지배자들은 그들 자신의 인민들을 억압한다. 그것이 그 나라들을 제국주의로 만들지는 않는다.

국제사회주의대안 등등은 “그러나 일대일로는 어떤가?”라고 소리를 지른다. “그것은 착취적인 제국주의 프로젝트가 아닌가?” 중국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있는 나라들에 사회간접시설을 건설하고 부채를 안기면서 수십조(미국 달러)를 투자해 왔다는 것은 사실이다. 중국이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로부터 시작하여 그러한 투자들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 또한 의심의 여지가 없다. 중국은 노동조합의 권리들을 공격했고, 관리들을 부패시켰고, 지역의 감정을 무시했으며, 모든 종류의 반동적 정권들을 지원했다. 하지만, 문제는 중국의 행위들이 자애로운지 여부가 아니라 일대일로와 같은 프로젝트들이 중국을 제국주의 지배자로 변형시켜왔는지 여부이다. 다시 말해서, 중국은 상당한 투자를 해온 나라들에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기 위하여 힘을 사용하는가?

중국의 “부채의 덫 외교”의 전형인 스리랑카를 보자. 스리랑카는 유명하게도 새로운 항구를 건설하기 위하여 발생한 중국으로부터의 대출에 대한 이자를 지불하지 못하였고, 그 항구를 99년 동안 중국에 임대해주었다. 그러나 중국이 스리랑카를 지배하는가? 아니다. 2022년 스리랑카가 외국 채권자들에게 (미국달러로) 지불할 수 없었을 때, 조건들을 명령하기 위하여 급습했던 것은 중국이 아니었다. 항상 그랬듯이, 그것은 IMF였고, 채권자들과의 핵심 협상들은 베이징이 아니라 워싱턴에서 열렸다. 심지어 서구의 참관자들은 스리랑카의 부채위기가 중국 대출들 때문이 아니었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파키스탄은 어떤가? 2017년에, 혁명적 공산주의인터내셔널 동맹 (RCIT)는“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은 파키스탄에 대한 식민지화를 위한 중국 제국주의의 프로젝트이다!” 라고 선언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ISA는 나름대로 파키스탄은 미국에 대항하는 중국의 제국주의 블록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중국의 부상’ – 철 지난 견해”, chinaworker.info, 4월 24일). 파키스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지식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이것이 완전히 터무니없는 생각이라는 것을 안다. 중국은 파키스탄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지만, 미국이 지배한다. 이것은 대통령 임란 칸을 그의 직에서 제거하고 감옥에 보내기 위하여 미국이 파키스탄 군부 엘리트와 함께 음모를 꾸미던 최근 2022년까지 가장 분명하게 증명된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중국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중국 제국주의”라는 주장들은 그것들이 아프리카를 문제로 삼을 때 필시 가장 기괴하다. 서구 열강들은 대륙을 극빈과 분쟁의 상태로 유지하면서 수백 년 동안 아프리카를 억압해왔다. 대륙을 덮고 있는 것은 중국의 전초기지들 (중국의 유일한 외국 기지가 지부티에 있다)이 아니라 프랑스와 미국의 군사기지들이다. 12개가 넘는 아프리카 나라들의 절반의 외환보유고를 차지해왔고 외환들을 통제하는 것은 프랑스이다. 그리고 다른 모든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부채위기들은 인민폐들이 아니라 달러들과 유로들의 지불들을 둘러싸고 발생한다.

다시 한번 더, 이것은 중국이 아프리카에서 자애로운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함이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요점은 단순히 중국이 아프리카에 있는 어떤 나라에서도 강요를 통하여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리비아, 소말리아, 말리, 니제르, 차드 그리고 너무도 많은 다른 나라들을 황폐화시킨 것은 중국이 아니다. 이 모든 사례들에 대해서는 서구 제국주의자들에게 책임이 있다.

이것이 우리를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로 인도한다. 중국은 태평양을 중국의 호수로 변형시키고자 하는가? 우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심지어 중국이 그렇다고 해도, 이것이 중국을 제국주의로 만들지는 않는다. 구체적일 필요가 있다: 중국이 현재 서 있는 정세는 어떠한가? 일본의 2차 대전 패전 이래, 미국이 태평양의 주인이었다. 대부분이 미군을 자신들의 영토에서 환영하는 미국의 동맹들에 의하여 중국이 완벽하게 포위되어 있음을 보기 위해서는 동지들은 단지 지도를 보기만 하면 된다. 필리핀, 남한, 인도네시아, 타이완 – 이들 나라들 중 누구도 중국에 의하여 억압당하지 않으며, 미국이 이 모든 나라들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것은 평화적이고 점진적인 과정이 아니었다. 이것은 도쿄에 대한 폭격,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의 대학살, 한국전쟁, 그리고 인도네시아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학살과 수도 없이 많은 다른 범죄들 속에서 확립되었다. 서구 제국주의를 비호하는 자들은 이 지역에서 중국의 군사력증강에서 피비린내 나는 살인을 외친다. 그러나 중국이 어느 나라를 침략해왔는가? 태평양에서 중국제국주의에 대한 울부짖음들은 미국 지배라는 현상에 대한 우둔한 굴종들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사실들을 객관적으로 봐야만 한다.

대만에 대해서 말할 것 같으면, 그 사례가 매우 독특하다. 역사적으로 대만은 중국의 일부였다. 1949년 혁명 이후, 대만은 중국 자본가계급의 망명지가 되었다. 그때 이래, 대만은 중국을 다시 한번 제국주의 지배 아래 두기 위한 교두보로서 미국에 의하여 의도적으로 만들어졌다. 오늘날 대부분의 대만 인민들이 중국과 재통일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것은 많은 부분 중국공산당이 오직 탄압과 동시에 타이완에서의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것을 제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타이완을 둘러싼 분쟁이 미국과 일본의 아시아에 대한 제국주의적 통제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을 바꾸지는 않는다. 본토로부터 타이완의 분리를 설명하는 것이 바로 이 통제이다. 타이완을 둘러싼 전쟁은 중국에 의한 제국적 정복 전쟁이 아니라 1949년 혁명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 될 것이다.

6) 정치적 함의들

중국과 러시아 제국주의를 둘러싼 시끄러운 소동은 지구 전체를 억압하는 것이 미국 통솔력 아래 있는 작은 열강 그룹이라는 사실을 가리는 것에만 복무할 뿐이다. 중국과 러시아 모두 그들의 직접적인 국경들이나 주변을 넘어서는 나라들을 억압하지 않는다. 사실 그들은 서구 제국주의에 의하여 수십년 동안 포위공격을 당해 온 나라들이다.

혁명적 전략을 위한, 그리고 동아시아나 동유럽의 프롤레타리아트를 단결시키기 위한 출발점은 그 지역으로부터 미국 제국주의를 축출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이것이 중국공산당이나 크레믈린을 지지하는 것이 필수적임을 의미하는가? 당연히 아니다. 그들의 반동적 정책들은 매 순간마다 제국주의에 맞서는 투쟁을 손상시킨다. 예를 들면, 러시아와 중국정부들의 우크라이나와 위구르에 대한 억압은 미국과 미국의 동맹들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단결을 손상시킨다. 그들의 민족적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동아시아, 동유럽, 그리고 세계를 억압하는 열강들에 맞서는 투쟁을 강화해 줄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 대한 하나의 전쟁에서 러시아나 중국의 승리가 세계 제국주의 체제의 꼭대기에 있는 미국의 지위를 그들이 차지할 것임을 의미하지는 않을까? 이 승리가 성취되는 구체적인 상황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 공산주의자들의 임무는 미국 질서의 붕괴가 노동계급에게 유리한 혁명적 국제주의적 조건들에서 벌어지는 것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확실하게 투쟁하는 것이다. 이 투쟁에 명확한 방향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매 단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내일 또 다른 열강이 새로운 억압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오늘 세계를 억압하는 열강인 미국의 패배를 위하여 투쟁하지 않는 것은 최악의 범죄일 것이다.

사실은, “중국 제국주의”를 규탄하는 것은 미국과 미국의 동맹들의 지배를 반대하는 것에 대한 거부를 가리는 얄팍한 무화과 잎사귀이다. 좌익에서 이 입장의 강세는 제국주의에 맞서 중국을 방어하는 한편으로 노동조합 관료집단이나 자유주의 세력들에 의하여 존중 받을 만 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서구에 줄을 댄 나라들에서는 불가능한 현실을 반영한다. 미국과 중국을 등가로 놓는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급진적으로 들릴지 모르나, 미국은 1945년 이래로 전체 제국주의 체제를 지배해온 반면, 중국은 자기 국경 외부 세계의 어느 곳도 지배하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들이다. 당연히, 동지들은 중국공산당의 정책들을 방어하면서 혁명가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중국 제국주의”라는 악귀를 제기함으로써 미국 지배에 맞서는 투쟁을 거부하는 것은 조잡한 사회적 배외주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