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iclfi.org/pubs/icl-ko/2026-icl-conf
“위기의 시대에 미국의 패권은 호황의 시대에서 보다 더 완전하게, 더 공공연하게, 그리고 더 무자비하게 작동할 것이다….
미국에서의 심각한 위기가 새로운 전쟁들과 혁명들을 위한 경보를 울릴 것이다. 우리는 반복한다: 혁명적 정세들의 부족함은 없을 것이다. 모든 문제는 전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세계정당, 코민테른의 성숙과 투쟁능력, 그리고 코민테른의 전략적 입장과 전술적 방책들의 올바름에 달려 있다.”
- 레온 트로츠키, 레닌 이후의 제3 인터내셔널 (1928년)
우리의 만사 카우르 동지가 초안을 작성하고 국제공산주의동맹 9차 국제대회에서 채택된 대회문서를 아래에 싣는다.
서론
국제정세는 지탱할 수 없는 모순으로 규정된다. 한편으로는, 미국 제국주의가 세계무대에서 자신의 패권을 재천명하기 위하여 잔혹한 공세를 벌이고 있다. 이렇게 하기 위하여, 미국 제국주의는 인류 전체를 위기들과 전쟁들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을 태세이다. 다른 한편으로, 미국 제국에 대한 진보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인 노동계급은 아직은 결정적으로 자기 자신의 기치 아래 무대에 들어서지는 않아왔다.
노동계급은 투쟁 의지가 결코 부족하지 않았지만, 노동계급의 역사적 이해관계를 위한 투쟁을 지도할 수 있는 지도부가 부재하다. 수 십년 동안, 맑스주의의 기치를 주장해온 조직들은 그러한 지도력을 제공하는데 실패해왔다. 이 진공상태가 반동세력들이 성장하는 것을 허용해왔다. 오늘날, 공산주의 운동은 절망적으로 분열되어 있고, 자신이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인민들로부터 고립된 채로 있다. 객관적 정세는 이 위기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며, 일시적 승리들 또한 거두지 못할 것이다. 재건의 작업을 시작하고 전세계적으로 혁명가들을 재편하기 위해서는 시대의 임무들에 조응하는 강령이 필요하다.
이러한 이해에 입각하여, 국제공산주의동맹 9차 국제대회는 아래의 분석과 강령을 제기한다. 이것은 소비에트 이후 시대 동안의 맑스주의 좌익에 대한 비판적 분석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 격동의 지난 3년 동안 계급투쟁 속에서 우리 자신의 소박하지만 결연한 경험에도 기초하여 만들어진다.
1부: 국제정세
“… 가장 중요한 것, 맑스주의의 바로 그 핵심, 정수를 이루는 것 – 구체적 정세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
- 레닌, Kommunismus[공산주의] (1920년 6월 12일)
미국과 중국
우리 시대를 규정하는 특징은 미국 제국주의와 중국 사이의 적대이다. 1945년 이래, 미국은 패권 제국주의 강국이며,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중추적 담보로 있어왔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미국의 경제적 기초는 상대적으로 쇠퇴해 왔다. 이 쇠퇴는 소비에트 이후 국제화에 의하여 가속되었고, 이것의 주된 수혜자는 중국이었다. 이 기초적인 그림은 폭 넓은 동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 긴장의 구체적인 동역학과 모순들은 광범위하게 인상주의와 경험주의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잘못 이해되고 있다. 오늘날 국제정세의 동역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관계의 역사적인 전개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생산의 수준에서, 국제화는 중국과 기타 글로벌 사우스 나라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제국주의 블록의 산업기반을 공동화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G7 나라들의 전 지구적 제조업 비중은1995년 60% 정도로부터 2020년에는 30% 정도로 절반 정도까지 줄어들었다. 이 분야에서 미국의 비중은 1995년 21%에서 2022년에는 17%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동안, 전 지구적 산업생산에서 중국의 비중은 6%에서 32%로 늘어났다. 이것은 대규모 전쟁에서 핵심적인 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영역에서 힘의 균형에서의 진정으로 극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하지만, 산업과 상업에서의 중국의 비중이 세계경제에서 중국의 금융적 역할과 제도적 역할보다 훨씬 큰데, 이 분야는 미국과 미국의 동맹들이 굳건하게 지배하고 있다. 이른바 IMF, 세계은행, WTO, 그리고 유엔 같은 국제경제와 국제관계들을 통제하는 기구들은 미국이 설립한 것 그대로이다. 미국 달러의 지배력이 줄어들어 왔지만, 미국 달러는 기축통화로 존재하고, 이것이 미국에게 “엄청난 특권들”을 부여한다. 월스트리트는 국제금융의 중심으로 남아 있다. 국제 시가총액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최근 수십 년 동안 45-50%를 차지하는 반면, 중국의 비중은 1980년 사실상 0%에서 2025년 약 10-12% 정도까지 상승했다. 그리고 중국이 국제무역에서 대략 15% 정도를 차지하는 반면, 인민폐 결제비율은 국제무역의 약 2% 정도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의 경제적, 상업적, 그리고 군사적 힘의 예외적 성장이 중국이 국제무대에서 미국을 대체하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근본적으로 중국은 보수적 역할을 하며, 자신의 경제적 힘과 제도적 금융적 허약함 사이의 엄청난 차이를 결정적으로 메우기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부상하는 강국으로서는 이례적인 것이다.
이 그림은 두 열강 사이의 군사적 동역학에서 반영되고 있다. 전 지구적으로 750개의 군사기지를 가진 미국이 군사적 우세함을 계속해서 가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 중국이 지출규모에서 두 번째로 큰 군사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은 미국의 지구적 패권을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국경들을 지키기 위함이다. 지부티에 있는 것이 중국의 유일한 해외 군사기지이다. 미국은 자신의 의지를 이 나라 저 나라에서 강요하면서 군사력을 사용하는데 거리낌이 없지만, 중국은 1979년 이래 전쟁을 벌여오지 않았다. 관세 공격들에 직면하여, 중국은 미국의 군산복합체를 마비시키기 위하여 희토류에 기초한 목조르기를 활용하지 않아왔다. 중국은 자신의 파트너들이 미국에 의한 공격 아래 놓여있을 때, 그들을 방어하기 위하여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아 왔는데, 베네수엘라, 이란, 그리고 쿠바가 그 주요한 예들이다. 외교정책의 영역에서 중국은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상당한 정도의 군사경제적 힘을 행사하기 보다는 국제법과 “윈-윈” 협조에 호소하는 것을 선호한다.
근본적으로 중국은 자기 자신의 패권을 수립하려고 행동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입지를 개선하고 어느 정도의 자치를 획득하기 위하여 현재의 질서를 개혁하고자 노력한다. 왜 이렇게 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제국주의는 자체의 논리 바로 그것으로 인하여 확장과 정복으로 내몰리지만, 중국에게는 똑같은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중화인민공화국(PRC)의 국가구조와 사회적 발전은 1949년 혁명에 뿌리를 둔 채로 있다. 이것이 중국의 외교정책이 무해하거나 국제주의에 입각한 것임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중국 국가의 사회적 기초들은 중국의 성장이 필연적으로 다른 나라들을 종속시기 위한 움직임으로 귀결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단순히 미국 제국의 희생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강요하는 배타적인 중국의 세력권이 없는 것이 이것 때문이다.
세계체제의 중심에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모순은 다음의 동역학으로 요약된다: 미국의 패권은 중국의 부상으로 인하여 약화되고 있지만, 중국공산당(CPC)는 미국이 주도하는 질서를 대체하려고 시도하지 않고 있다. 산업의 쇠퇴와 금융자본의 기생적 역할이라는 조건하에서, 미국경제는 그저 전통적인 방식을 통해서는 중국을 이길 수가 없다. 꼭대기에 머물기 위해서 미국은 세계의 나머지를 끌어내리기 위하여 어느 때보다 강력한 공격성과 힘에 의존해야만 한다. 그래서 우리는 부상하는 강자는 기존질서를 보존하기 위하여 싸우고 있는 반면 쇠퇴하는 강자는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동맹과 원수를 하나같이 쥐어짜면서 세계관계에서 반동적인 새로운 재편을 만들어내려고 애쓰는 가운데 기존 질서를 찢어발기려고 하는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는 정세와 맞닥뜨리고 있다.
무기력한 동맹들
이 부상하는 동역학 속에서, 유럽은 스스로가 커지는 모순에 빠져 있음을 알게 된다. 미국 패권의 약화는 유럽 열강들이 더 많은 전략적 자율성을 가지는 것의 필요성을 부각시킨다. 하지만, 커지는 긴장들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EU)은 미국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제국을 떠받치기 위하여 점점 더 많은 자원들을 투입하면서 미국의 강권을 수용하고 있다. 첫째,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건설로부터 소련 붕괴 이후 유럽의 확장에 이르기까지 현대 유럽의 기초 전체가 미국 군사력의 우산 아래에서 건설되었다는 사실이 이것을 설명해준다. 이것은 나토에서 구현된다. 단결시키는 힘으로서의 미국이 없다면, 유럽연합은 구성부분들로 분해될 것이다.
둘째, 그들 자신의 상대적 쇠퇴 때문에, 유럽연합의 제국주의 나라들은 세계 무대에서 자신들의 특권적 지위를 방어하기 위하여 미국에 갈수록 더 의존적이 되어 왔다. 그들의 간절한 소망들과 몇 번의 공허한 선언들에도 불구하고, 현재 그들은 자신들의 힘을 독립적으로 투사할 능력이 없다. 그래서, 유럽은 독립적인 세력으로 부상하기 보다는 워싱턴이 정하는 반동적 경로를 점점 더 따르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자기 자신의 경제와 정치적 안정을 파괴하고 있다. 똑같은 동역학이 일본, 그리고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 같은 하위 제국주의 열강들의 궤적을 설명해준다.
러시아, 요지부동의 존재
러시아가 미국에 저항하는 중요한 세력으로서 두드러진다. 비록 러시아가 미국의 야망들을 저지하기에 충분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경쟁하는 국제질서를 수립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비중을 가지고 있지 않다. 러시아가 승리할 것으로 보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자신의 서쪽 국경에서 나토의 확장에 저항하고 이를 밀어낼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노력들은 상당한 비용을 수반해왔다. 게다가, 시리아에서건 혹은 아프리카에서건 러시아의 국제적 모험 시도들은 성공적이지 않아 왔으며, 러시아의 국제적 영향력을 의미있게 상승시키지도 않아 왔다. 러시아의 일반적인 역할은 미국 패권에 대한 대안세력에는 미치지 못하며, 이보다는 기존질서를 대체하지는 못하면서 그것의 위기를 가속화하는 미국 패권에 대한 제동창치이다.
서아시아에서의 반동의 소용돌이
10월 7일 이래로, 이스라엘은 대학살의 사이클을 확대해왔고, 매 단계에서 미국의 지원을 받아왔다. 이 동역학은 10월 7일 그 자체에서 주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이란 쪽으로 기울고 있는 이 지역에서의 이스라엘과 미국의 지위의 상대적 약화에서 주로 기인하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인민들에 대한 억압과 학살에 뿌리를 둔 민족주의적 의제로서의 시온주의는 이 지역에서 자신이 아랍 대중들을 억압할 수 있는 능력에 도전할 수도 있는, 자신의 지배에 대한 견제세력을 용인할 수가 없다. 그 결과, 시온주의 국가는 서아시아 지역의 모든 사회구조를 파괴하는 가운데, 이 지역에서 자신의 우월함을 재수립하기 위하여 점점 더 공격적인 방책들을 사용해왔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시리아 같은 다수의 그들의 적대국가들에게 전술적이고 전략적인 패배들을 안기는데 성공해왔지만, 이것들이 두 나라의 지역에서의 지위 의 근본적인 위기를 해결하지는 못해왔다. 군사적 우월함은 그들로 하여금 안정적인 정치질서를 수립하도록 하지 못 해왔으며, 이슬람공화국을 파괴하기 위한 두 나라의 시도들은 실패해왔다. 하지만, 이란에 대하여 가중된 압력의 장기적 결과들은 두고 볼 일이다. 분명한 것은 미국과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결정적으로 패배할 때까지 이 지역에서 계속해서 말로 다할 수 없는 엄청난 파괴를 자행할 것이라는 점이다.
공격의 표적이 된 라틴 아메리카
중국의 부상은 한 때 미국 제국주의가 행사하던 독점에 가까운 지배를 약화시키면서, 많은 라틴 아메리카 나라들에게 더 많은 경제적 그리고 외교적 운신의 여지를 제공했다. 하지만 이 지역은 미국 지배의 정치적, 군사적, 그리고 금융적 구조들에 깊게 통합되어 있다. 미국 패권이 국제적으로 점점 더 큰 압력하에 놓이면서, 워싱턴은 자신의 배타적인 세력권으로 계속해서 여기는 지역에서 자신의 권위를 다시 확보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미국은 자신의 결정적인 군사적 이점과 이 지역 지배 엘리트의 핵심적 부문들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지렛대로 삼아 그렇게 하고 있다. 이러한 이점들 때문에, 미국은 라틴 아메리카를 중국을 이 지역에서 밀어내고 미국의 재산업화를 보장하기 위한 최적의 지역으로 확인해왔다.
몇 개의 정부들이 새롭게 워싱턴에 줄을 서는 것, 그리고 베네수엘라 대통령 마두로 납치와 쿠바에 대한 봉쇄 강화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이 미국의 힘을 더욱 공격적으로 행사하는 것 속에서 이것은 이미 반영되어 왔다. 그래서, 라틴 아메리카의 일부가 성취한 상대적 자율성뿐만 아니라 중국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서반구에서 자신의 권위를 복구하려는 미국 제국주의의 결연한 의지와 점점 더 많이 충돌한다.
심화되는 아프리카의 분열
아프리카 대륙은 열강들의 경쟁의 초점은 아닐지 모르지만, 그 결과들에 의하여 상대적으로 더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경제개발과 대륙의 통합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에서, 아프리카는 심화되는 분열의 상황과 분쟁으로 점점 더 끌려가고 있다. 강력한 민족국가들이 없다는 것은 지정학적 충격들이 이미 취약한 사회구조에 훨씬 더 큰 타격을 가함을 의미한다. 이것이 기존의 분열을 활용하려는 지역적 그리고 국제적 세력들을 위한 공간을 열어준다. 기존의 제국주의 열강들이 러시아, 튀르키예, 그리고 걸프 왕조들을 포함하는 지역의 세력들뿐만 아니라 부상하는 중국과 경쟁하면서, 지역분쟁들이 더 확대된 지정학적 경쟁관계와 점점 더 많이 뒤얽히고 있다. 또한, 르완다 같은 국가들은 자신들의 국경들을 넘어 개입하고 기존에 존재하던 긴장들을 심화시키면서 그들 자신의 전략적 이해관계들을 전진시키려고 해왔다. 대륙을 뒤흔드는 다양한 분쟁들과 개별 나라들 내부에서 첨예해지고 있는 사회적 적대들이 심화되는 국가 내에서의 분열, 격화된 민족적 그리고 종족적 적대들, 그리고 공적 권위와 서비스의 붕괴의 징후를 가리킨다.
하지만 심화되는 아프리카의 분열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대륙에 어느 정도 경제성장을 가져왔던 자유주의 시대에 조차, 르완다로부터 콩고와 다르푸르에 이르기까지, 피비린내 나는 전쟁들과 학살들이 만연했다. 자유주의의 시대에 NGO와 국제기구들을 통한 제국주의의 원조가 대규모로 늘어났지만, 이제는 대규모로 줄어들어왔다. 원조 대신, 미국은 대륙의 위기들에 대하여 무관심, 벌거벗은 약탈, 혹은 공공연한 강권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의 심화되는 분열은 규모와 깊이에서의 악화로 특징지어진다.
대륙의 분열된 상태가 극단적인 위험들을 드러내지만, 또한 대륙의 젊고, 증가하는 극단적으로 착취 당하는 노동계급은 거대한 혁명적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아프리카를 분열시키고 약화시키는 바로 그 모순이 신식민지 질서의 혁명적 전복과 새로운 사회적 기초 위에서의 대륙의 통일에 대한 필요성을 더욱 더 분명하게 만들고 긴급하게 제기하도록 한다.
모루와 망치 사이에 낀 남동아시아
세계화가 남동아시아를 중간 연결고리로서 국제 공급망에 통합시켰는데, 이것은 외국 제조업 거대기업들에 의하여 지배되고, 중국산 중간재들에 의존하며, 미국의 소비시장을 향한다. “무역은 중국과, 안보는 미국과”가 아세안의 슬로건이었다. 지금 이것은 남동아시아가 모루와 망치 사이에 끼어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은 중국을 목 졸라 죽이려는 목적으로 국제 공급망들을 난도질하면서 이 지역 경제들의 발목을 걷어차고 있다.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에 대한 경고로서, 트럼프의 관세 공세들과 이란과의 전쟁은 인구의 다수가 벼랑 끝에 살고 있는 이 지역에 이미 파멸적인 경제적 타격을 가해왔다. 남동아시아를 군사화하고 2차 세계대전 이래 처음으로 이 지역 전역에서 일본군의 공세적인 확장을 고무함으로써, 미국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위협을 끌어올리면서 전쟁의 망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남동아시아 전역에서, 사회적 폭발들의 토대가 준비되고 있다.
벼랑 끝에 있는 세계경제
커지는 지정학적 갈등들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의 기초 구조는 현저하게 활력이 있다. 그러나 이 활력을 - 중심적으로 미국 주식시장의 예외적인 실적 - 유지시켜 온 바로 그 힘들이 전체 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들려는 새로운 모순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전례가 없는 수준의 재정 및 통화 부양책, 주요 테크 기업들의 대규모 자본 지출, 그리고 이것들 모두가 만들어 낸 투기 열풍이 월스트리트의 중력을 거스르는 폭등을 야기해왔다. 이 동역학이 언제 끝날 것인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분명한 것은 결국에는 벌어질 기술부문에 집중된 투기 붐의 붕괴가 세계 정세에 대한 심대한 결과들을 낳을 것이다. 이미, 중국의 디플레이션 입력과 과잉산업 생산능력이 세계의 나머지 지역들로 번져가고 있다 – 자본주의적 과잉생산의 국제적 위기의 유력한 조기 신호들.
재정거품의 폭발이 진정한 국제적 세력판도를 가리고 있는 가상자본의 산을 휩쓸어버리고 미국 제국이 심장부로부터 썩어 있음을 폭로할 것이다. 하지만, 세계경제의 기본적인 골격이 온전하게 유지되는 한, 부담의 많은 부분을 다른 나라들에게 지우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가운데, 미국은 위기에 대한 대응과 그 결과 모두를 만들어 내는데 있어서 엄청난 이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선, 우리는 다가오는 위기가 기존에 존재하는 모든 동역학들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점과 자본가들의 공격이 격화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반동으로의 더욱 후퇴로 귀결될지 혹은 혁명적 사태 전개로 향하는 길을 열지는 무엇보다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응에 달려 있게 될 것이다. 이제, 그 결과들은 각 나라의 노동계급 지도부와 조직에 달려 있다. 이제 이 정치적 문제로 화제를 바꾸고자 한다.
2부: 국제정치의 동역학들
“일반적으로, 주관과 객관 사이의 괴리는 인생과 예술 모두에서 비극과 마찬가지로 희극의 원천이다. 다른 어떤 영역보다도 정치의 영역은 이 법칙의 작용을 면할 수 없다. 사람들과 정당들은 그 스스로 속에서가 아니라 환경들과 맺는 관계들 속에서 영웅적이거나 희극적이다.”
-레온 트로츠키, 러시아혁명의 역사 (1930년)
자유주의의 사망과 반동의 부상
소비에트 이후 시대라는 정치의 기성질서는 산산이 깨져있다. 미국 패권이라는 소비에트 이후 시대에 적절했던 사상적 도구들은 오늘날의 제국주의 열강들의 필요에 더 이상 조응하지 않는다. 미국 패권이 도전 받지 않을 때에, 미국은 국내와 해외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사치를 부리고, NGO들에 기금을 대고, 스스로를 인권, 자유무역, 다문화주의 등의 옹호자로서 선언할 여유가 있었다. 이제 이 길은 수명이 다했다. 자신의 패권이 약화되면서, 미국은 공세로 나아가야만 한다. 미국은 이제 미국의 목적들에 대한 장애물들인 자유주의적 가치와 기구들을 통해서는 공세를 취할 수 없다.
자유주의의 사망이 국제정치에서 새로운 질서가 완성되어 왔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미국 제국주의의 공세에 의하여 시작된 일반적 경향은 커지는 불안정, 반동, 그리고 분쟁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옥으로 가는 일직선의 길 위에 있지는 않다. 미국 제국주의의 필요와 목적들과 이것들을 충족시키고 시행할 미국 제국주의의 능력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미국 제국주의의 공격성은 이미 온갖 종류의 저항을 촉발해 왔다. 하지만, 경쟁자들과 도전자이기를 바라는 다양한 자들은 심지어 쇠퇴 중에 있는 미국이 세계정치를 좌우함에 있어서 주도권을 가지도록 허용하면서 자기 자신들의 파산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결과적으로, 자유주의 세계질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고양이나 반제국주의 공세를 통해서가 아니라 반란을 일으킨 제국주의 우익에 의하여 무너지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의 지도자들은 미국 제국주의의 약탈에 저항하라는 계속해서 커지는 압력하에 놓이고 있지만, 자기 자신의 계급적 이해관계와 대중들을 투쟁으로 조직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얽매인 채, 맞서기 보다는 타협을 하고 수작을 부리려고 애쓴다. 1949년 혁명의 성취들 위에 서 있는 중국공산당은 세계화와 자유주의 세계질서의 잔재들에 매달림으로써 혁명적 에너지와 거대한 중국 프롤레타리아트의 잠재력을 탕진하고 있다. 대부분의 다른 지도자들은 미국에 맞서 단결하는 것과는 반대로 다양한 압력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것의 가장 좋은 예가 통일된 전략적 목적들이 없고 개별 회원국들의 총합에도 미치지 못하는 브릭스 플러스이다.
노동자운동으로 말할 것 같으면, 대부분의 경우들에서 운동의 지도자들이 심지어 자신들의 눈 앞에서 자유주의 기성질서가 붕괴하고 있는데도 이 질서를 떠받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급진적 파열 혹은 심지어 혁명을 주장하는 좌익들은 일반적으로 시대의 구체적인 임무들과 단절된 추상적 수사들로 스스로를 만족시키면서 대중들의 진정한 감정들과 괴리된 채로 있다. 제국주의 심장부들에서건, 신식민지 세계에서건, 혹은 다양한 저항운동들 속에서건,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독립적인 프롤레타리아트 반대의 부재가 세계의 사태전개들을 좌우하는 단 하나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이것이 바뀔 때 까지는, 미국 패권의 침식은 대중들의 해방을 전진시키기 보다는 대중들의 억압을 가중시키면서 반동적 방향으로 계속 진행 될 것이다.
이것은 비혁명적 세력들이 미국에 좌절들을 안겨줄 수 없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좌절들은 언제나 부분적인 것으로 남을 것이다. 진정한 프롤레타리아트 지도부를 건설하는 것이 현 시대에 혁명적 전략의 중심적 문제이다. 이것은 정치적 동역학들에 대한 현실적인 분석을 통하여, 그리고 현재의 투쟁들에 대한 경험으로부터 분명한 교훈을 도출함으로써 오직 풀리기 시작할 수 있다.
서구 전역에서 부상하는 포퓰리스트 우익
미국의 트럼프와 마가로부터 영국의 개혁당(Reform),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폴린 핸슨의 하나의 민족당(One Nation)에 이르기까지 기성질서에 반대하는 주요 세력으로서 서구 전역에서 포퓰리스트 우익이 부상하고 있다. 포률리스트 우익세력은 미국의 제국적 전략의 필요성과 인구의 상당한 층들 사이에서 자유주의 기성질서에 대한 광범위한 반대 사이의 수렴현상이라는 기초 위에서 기반을 획득하고 있다. 그 결과, 포퓰리스트 우익이 노동계급의 분노와 원망을 반동적인 정치적 아젠다로 점점 더 많이 유도할 수 있게 된다. 어제의 정치적 중도세력이 우익인자들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이런 우경화의 가장 분명한 징후이다. 영국에서는 노동당이 이민에 반대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해왔고, 미국에서는 흑인과 성전환자들의 권리에 대한 방어라는 과거 그들의 가식을 포기해왔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박살나고 있는 분홍물결
라틴 아메리카에서 우익 정부들의 커지는 물결은 이 대륙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의 기성질서에 대한 비슷한 반대에 의하여 추동되고 있다. 2000년대 반제국주의 감정의 파도를 타고 권력에 올랐던 좌익 포퓰리스트 정부들은 지금 모든 곳에서 추락하고 있다. 이들 정부들은 많은 진보적 개혁들을 수행했지만, 또한 궁극적으로 후퇴들과 배신들을 자행하면서 대중들의 혁명적 에너지를 제한하기도 했다. 이제, 좌익 포퓰리스트 정부들이 지속적인 개선을 가져오지 못했던 것에 올라타고 있는 자들은 분홍물결의 교훈들로 무장을 한 맑스주의 도전자들이 아니라 우익 포퓰리스트와 친제국주의 세력들이다.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르 정권은 미국 제국주의의 첫 번째 직접적인 군사적 타격으로 깨졌다. 대통령 마두로에 대한 납치에 반대하는 어떠한 의미 있는 정도의 대중적 저항도 없었다는 것과 구 부통령 차비스타 델시 로드리게스가 지금은 미국과 협력하고 있다는 사실이 정권이 얼마나 완전하게 부패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어 왔다.
비슷한 경향이1959년 이래 피억압 인민들과 반제국주의자들의 등불이었던 쿠바에서 목격된다. 트럼프가 미국에 의한 사악한 봉쇄를 강화하면서 지금 쿠바혁명은 위기에 처해 있다. 하지만, 봉쇄를 깨뜨리기 위한 국제주의적 그리고 혁명적 전략은커녕, 쿠바공산당은 모든 것을 협상에 걸고 있으며, 자본가들이 경제를 접수하도록 문을 열어왔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쿠바혁명을 박살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미국과 탈쿠바 반동들 (gusanos)을 강화해 줄 수 있을 뿐이다.
이 광경들 속에는 모순들이 존재한다. 멕시코와 브라질은 여전히 좌익정부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정부들은 말로는 미국에 맞서왔지만, 브라질의 룰라와 멕시코의 샤인바움 모두가 또한 수없이 많은 양보들을 해왔다. 볼리비아의 경우, 파즈의 신자유주의 정부에 반대하는 대중봉기가 실제 반격의 가능성을 열었다. 하지만, 볼리비아 노동자 총연맹의 지도부는 정부와 협정을 맺고는 도로봉쇄들을 풀 것을 호소했고, 그래서 원주민 농민 대중들을 배신했다. 이것이 노동자운동과 농민운동 사이에 균열을 야기해왔고, 볼리비아 부르주아지 계급과 워싱턴에 있는 그들의 지배자들 에 맞서 투쟁할 수 있는 능력을 약화시켰다. 이제 파즈는 대중들에 대한 그의 공격들을 강화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미 농민 지도자들을 투옥시켜왔고, 노동조합들을 공격해 왔으며, 삶의 조건을 악화시켜 왔다. 이 결과는 이 지역에서 미국 제국주의의 장악력을 강화시킨다.
남아시아에서 단단히 자리잡은 우익
남아시아 나라들에서의 동역학들은 글로벌 사우스에게 닥쳐올 것이 많이 진행된 상태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커지는 외부적 압력들과 거대한 국내에서의 필요들 사이에서 쥐어짜지고 있는 인도와 파키스탄 같은 나라의 정부들은 자신들의 나라의 모순들을 관리하고 자신들의 지배를 보장하기 위하여 어느 때보다 더 종교적 민족주의, 탄압, 그리고 보나파르트주의에 의존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인도인민당(BJP)는 최근의 지방선거에서의 승리들을 통하여 자신의 전국적 힘을 강화해왔는데, 부분적으로는 투표자 명부를 대량으로 없애는 것을 통하여 승리가 가능했다. 좌익은 점점 더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수십 년 동안 자신들의 지지기반을 소외시켜온 공산주의자들은 권력에서 그들의 마지막 발판을 잃어왔고, 모택동주의 봉기는 국가에 의하여 박살이 나고 있다. 파키스탄에서는 그것이 좌익으로부터 나온 것이건, 카슈미르에서 나온 것이건, 혹은 전수상 임란 칸으로부터 나온 것이건 모든 불만을 박살내는 심지어 더 심한 군사독재적 참호가 있다. 그러나 대중들이 참을 수 있는 정도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가 더 불안정한 시기로 들어갈수록, 이들 사회들의 기저에 쌓이는 사회적 불쏘시개는 단지 더 많은 폭약들을 만날 것이고, 이웃 나라들인 네팔, 방글라데시, 그리고 스리랑카에서의 봉기들처럼, 이 불쏘시개는 폭발하여 보나파르트들의 지배를 불안정하게 하려 하고 있다. 최근 파키스탄이 점령하고 있는 카슈미르에서의 투쟁들과 인도에서의 학생운동이 비슷한 잠재력을 보여준다.
놓친 기회들
최근 몇 해 동안 조류를 바꾸고 노동계급을 민족적 그리고 국제적 사태들을 규정하는 요소로서 정치무대에 등장 시킬 수 있었던 중요한 기회들이 있어왔다. 그것이 코비드 팬데믹 이후 서구에서 파업들의 증가이건 글로벌 사우스에서의 제트세대 봉기들이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모든 경우들에 있어서, 정세의 고조들을 기회로 결정적으로 활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지도부가 없었고, 이들은 지배계급이 주도권을 다시 확보하도록 허용했다. 각각의 경우에서 장애물은 전투성의 부재가 아니라 지도부의 부재였다.
2022-2023년 영국에서의 파업의 물결과 2023년 프랑스에서의 연금개혁 반대투쟁은 그 투쟁을 정부들을 결정적으로 패배시기기에 충분할 정도로 상승시키려고 하지 않았던 노동조합 지도자들에 의하여 패배했다. 미국에서는, 2023년 UPS, ILWU, UAW, 그리고 할리우드에서의 파업과 노동조합 투쟁들의 물결은 물론 2024년 보잉과 ILA 파업들도 파업들을 추동했던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들은 해결하지 못한 채, 임금인상으로 마무리 되었다. 이것은 계급투쟁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었다. 이 투쟁들이 성공적이었다면, 노동계급은 투쟁하여 승리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 속에서 더욱 강력하고, 새로이 활력을 가진, 그리고 더욱 단결된 세력으로서 등장해왔을 것이다.
그리스에서는, 2015년 커다란 패배 이후에 템피 투쟁이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유리하게 세력관계를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나라의 행로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도 있었다. 하지만, 노동자운동은 대중들의 불만을 활용하는 것에 실패했다. 그리스 공산당, 노동자운동의 지도부, 그리고 좌익은 노동계급 전망을 거부하면서 “정당들이나 피부색들이 아닌” 전략을 추진했던 그 운동의 소부르주아지 지도부에 굴종했다. 공산당, 노동자운동의 지도부, 그리고 좌익의 정책은 대중의 분노를 제국주의적 지배에 대한 결정적인 투쟁으로 변형시키는 것을 거부했고, 이 제국주의적 통제는 범죄행위를 초래했다. 이 패배는 노동계급과 피억압 인민들을 더욱 약화시키고 의기소침하게 해왔다.
최근의 제트세대 봉기들은 신식민지 세계 청년들의 급격하게 열악해지는 조건들과 그들의 부패한 지도자들에 대한 들끓던 증오가 부채질한 불만의 중대한 폭발들이었다. 하지만, 그 폭발들을 추동했던 그 가공되지 않았던 에너지는 그것 자체로 대중들의 전체적인 지위를 개선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몇몇 봉기들은 (인도네시아, 모로코, 페루) 탄압으로 분쇄되었던 한편, 다른 봉기들은 우익정부들 (방글라데시, 네팔)와 군사정권 (마다가스카르)으로 귀결되었다. 이 결과들은 지배계급들과 제국주의 지배에 맞서는 진보적인 방침을 제시할 능력을 가진 일관성 있는 정치지도부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이 운동들에서 노동계급들이 주변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 그들을 탄압과 회유에 대하여 그들을 취약한 채 버려두면서 그들의 이질성을 키웠다.
구 남한 대통령 윤석열에 의한 2024년 12월 쿠데타는 전투적 노동조합이 주도했던 대중적 투쟁 조직화에 의하여 신속하게 격퇴되었다. 이 놀라운 패배가 노동계급을 강한 지위에 놓았다. 윤석열의 광신적인 친미국 아젠다에 반대하는 이 반발은 남한 반동의 초석인 한미동맹에 중대한 균열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똑같이 친제국주의적이지만 덜 광신적인 민주당에 대한 투표로 분노를 빨아들이고 지배계급을 위하여 정치정세를 안정화시키면서 배신을 했다.
마지막 숨을 헐떡이고 있는 자유주의 좌익
비록 우익이 국제적으로 상승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가하는 세계적인 불안정과 혼란은 이전 시대에 의하여 건설되고 모양을 지었던 좌익저항의 형식들을 계속해서 앞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정치정당들의 영역에서, 이 형식들은 영국의 녹색당과 이미 소멸상태에 있는 당신의 당, 독일의 좌파당,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와 같은 집단들을 포함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형식들을 흡수하고 새로운 희망의 감정을 얻는다. 이것은 망상에 빠지는 것만큼이나 위험스럽다.
이 “좌익의 재부상”을 추동하는 것은 불행하게도 노동계급 전투성의 새로운 물결이나 강한 노동계급의 지지가 아니다. 그것보다는, 이 정당들의 추동력은 광대한 층의 중간계급 자유주의자들과 진보적인 학생들은 물론 우익 정부라는 전망에 당연하게 두려움을 느끼는 소수계들 사이에서의 공포와 절망이라는 명백한 감정이다. 이들 정당들과 그 지도자들은 불확실성과 혼란에 직면하여 자유주의의 보다 급진적 버전에 매달리는, 세상의 사태들에 대한 무릎반사적 반응을 대변한다. 그들을 지탱해 주었던 세계질서가 사라지고 있는 때에 자유주의라는 공허한 서사를 재활용하는 것은 성공의 비결이 아니라 대대적인 재앙의 비결이다.
정확히 이 특징이 각자의 나라들에서 우익을 강화시키는 가운데 이 정당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보다 보수적인 노동자들을 그 정당들로부터 더욱 멀리 밀쳐내는 것이다: 영국에서 녹색당은 개혁당에, 프랑스에서 멜랑숑은 극우에 뒤떨어지고 있으며, 좌파당은 독일의 대안에 더 많이 뒤떨어지고 있다.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좌익의 재부상이 아니라, 나빠지고 있는 객관적 정세와 이에 대한 대응으로 앞으로 밀쳐지고 있는 완전히 쓸모없는 주체적 인자들 사이의 커지는 격차가 쓰고 있는 슬픈 희극이다.
이 좌익의 재부상을 지지하는 자들은 또한 팔레스타인을 위한 이탈리아 노동자들의 최근 파업과 프랑스에서의 “모든 것을 봉쇄하라” 운동을 지적한다. 하지만, 이것들은 지속 가능한 운동으로 부상하는데 실패해왔다. 이 운동들은 시작하자마자 끝이 났고, 그 나라들의 전반적인 궤도를 바꾸지 않아왔다. 프랑스에서는, 국민연합(Rassemblement National)이 대통령 궁에 조금씩 더 가까워지고 있고, 이탈리아에서 멜로니는 권력에 대한 어떠한 의미있는 도전에도 직면해 있지 않다. 두 가지 경우 모두에서,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두 나라 모두에서 강한 전통을 가진 급진 생디칼리즘의 변화하는 세계정세에 대처함에 있어서의 무능력이다.
미국의 좌익은 민주당이 아니라 정체성 정치를 내다버린다
트럼프 2기 집권은 미국 좌익에서의 중대한 사태전개들을 유발해왔다. 선거와 관련하여, 민주사회주의자의 일원인 조란 맘다니가 20세기의 “하수도 사회주의”를 명백하게 모델로 하는 빵과 버터 공약에 기초하여 뉴욕에서 시장에 당선되었다. 구체적으로, 이 공약은 인종적 억압과 경찰의 잔혹행위와 같은 가장 폭발적인 사회문제들을 회피하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 이것은 정체성 정치의 시대로부터의 중대한 떠나기였다. 다른 DSA 당선인들과 마찬가지로, 맘다니는 노동계급, 흑인, 그리고 라틴계열 대중들을 공격함에 있어서 주저함이 없었다. 하지만, 이것이 대부분의 좌익이 그의 승리를 위대한 승리로 기뻐하는 것, 그의 배신들을 변명해주는 것, 그리고 민주당과 결별하기 위하여 DSA와 노동자 운동 내부에서 진짜 투쟁을 벌이는 것을 거부하는 것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거리들에서의 ICE 테러에 대응하여, 중대한 그리고 종종 영웅적인 인민들의 투쟁들이 있어왔다. ICE에 반대하는 시위대 두 명에 대한 살해에 뒤이어 미니애폴리스에서의 투쟁으로의 조직화들은 정점을 이루었다. 이 투쟁들은 트럼프의 전체주의적 추방정책에 대한 인민들의 깊은 반대가 존재함을 보여주어 왔지만, 지금까지 이 투쟁들은 또한 이 운동이 노동조합과 민주당의 보수적 지도부를 돌파할 능력이 없음을 보여주어 왔다. 트럼프는 일시적 후퇴로 강제되어왔지만, 그의 전체적인 반이민 공세는 깨지지 않아왔다.
막다른 골목에 있는 저항의 축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적 맹공격에 맞서는 이슬람공화국의 저항은 이 신정 자본주의 정권이 서아시아에서 제국주의에 맞서는 투쟁을 이끌 수 있다는 환상을 조장한다. 그러나 이슬람공화국은 자신이 미국에 맞서 일어설 수는 있지만, 동시에 이 지역으로부터 미국을 축출할 수 있는 진정한 반제국주의 저항을 위한 초점이 될 의지와 능력이 전혀 없음을 보여주어 왔다.
이란의 지배집단은 분명히 이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은 자기 자신의 기생적 존재를 유지하는 것에 대한 이란 지배집단의 이해관계 다음의 문제이다. 그 결과, 이란의 지배집단은 이 지역의 대중들이 외세의 공세에 맞서는 투쟁에 돌입할 것을 호소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이 저항을 엄격한 군사관료적 통제 안에 두고 있다. 게다가, 이란 내부에서, 이슬람공화국의 전제적 정권은 피억압 인민들을 민족으로, 종교적으로, 그리고 성별로 분열시키는데, 이것은 통일된 반제국주의 투쟁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더 나쁜 것은, 불만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유혈 탄압이 인민의 대규모 층들을 왕조주의적 친제국주의 반동의 품 속으로 밀어낸다. 제국주의를 물리치고 제국주의를 이 지역으로부터 축출하기 위해서는 대중들의 최대한의 단결이 필요한데, 이러한 단결은 단순히 이슬람공화국의 정치에 기초해서는 건설될 수가 없다.
대학살을 벌이는 시온주의자들의 맹공격에 맞서는 팔레스타인 인민들의 저항은 영웅적이었으며 영웅적이다. 하지만, 이 사실이 해방운동의 정치적 전략적 난국상을 가리기 위하여 이용되지 말아야만 한다. 팔레스타인 인민들은 전례가 없는 규모로 사회적 그리고 인류적 대재앙을 겪어왔다. 가자는 완전한 재앙의 상태에 있고, 이스라엘은 가자 몫으로 남아 있는 모든 것들을 병합하고 싶어한다. 서안은 어느 때보다도 더 좋지 않다. 이것이 하마스 전략의 실패들을 드러내왔다: 이스라엘, 미국, 그리고 이들과 협조하는 아랍 정권들에 맞서 단결투쟁하는 서아시아 대중들에 의존하기 보다는 이스라엘을 물리치기 위하여 자유주의적 여론과 아랍 정권들에 의존하는 것. 저항이 막다른 골목에 처하자, 하마스는 기본적으로 스스로의 무장해제의 조건들에 관해 협상하고 있고, 운동은 어떻게 투쟁을 계속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전망을 가지고 있지 않다.
소멸되는 팔레스타인 투쟁
가자에서의 학살이 수백만 명을 행동으로 분기시켰고, 2년이 넘는 동안 세계 전역의 주요도시들에서 수십 만명이 행진을 했다. 하지만, 이것은 네탄야후를 멈추게 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서구에서는, 운동의 정치를 장악하고 있던 자유주의적 격한 분노, 그리고 이스라엘에 맞선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대학살을 가능하게 하고 있던 바로 그 민주당의 대표로 있던 라쉬다 틀라이브 같은 미국 정치인들에 대한 의존으로 인해 이 운동은 마비되었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그리고 튀르키예와 같은 무슬림이 인구의 다수인 나라들에서는, 정부들이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는 가운데 대중적 동원을 지지했거나 심지어는 조직하기까지 했다.
팔레스타인 운동은 노동계급의 요구들을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투쟁으로 융합한다는 운동의 전략적 전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러한 전망이었다면, 정부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그들의 지지나 협조를 깨도록 하기 위한 실질적 압력을 가했을 것이다. 그렇기는커녕,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대중적 팔레스타인 행진들은 대체적으로 용인되었고, 분노를 표출하기 위한 규범이 되었던 정기적으로 잡히는 행사들이었다. 그러나 이 규범을 위반하고 이 규범의 방향에 도전하려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상대적으로 고립된 채로 있었고, 국가기구들에 의하여 잔혹하게 탄압당했다. 오늘날, 이 운동은 쇠잔해진 상태이다. 혁명가들은 이 결과들로부터 냉정한 교훈들을 도출하고 운동의 정치적 재무장을 향하여 활동해야만 한다.
공격들, 충격들, 그리고 격변들에 대비하라
전반적으로, 국제적인 힘의 균형은 가까운 미래에는 노동계급과 피억압 인민들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미국 제국주의는 광란을 벌이고 있고, 우익은 부상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좌익과 노동계급 사이의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격차가 존재한다.
당장은 의기소침, 무관심, 그리고 후퇴와 자기보존을 향한 경향이 노동계급 안에서 지배적인 경향이다. 그러나 계급투쟁은 직선을 따라 전행하지는 않는다. 포퓰리스트 우익은 쌓여있는 불만을 활용하고, 이 불만을 성공적으로 반이민과 기타 반동적인 경로들로 밀어붙이고 있다. 이 모델은 잠시 동안은 작동하겠지만, 사회적 위기의 근저에 있는 추동력들 중 어느 것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가 없다. 성장, 일자리들, 그리고 “좋았던 옛 시절”로의 복귀라는 우익의 약속이 실현되기를 바라면서 우익에 기대하는 사람들은 실망할 것이다. 필연적으로 노동계급들이 행동에 나서도록 떠밀릴 것이다. 혁명가들에게는 이들 충돌들이 노동운동을 강화하면서 궁극적으로 승리들로 귀결될 것인지, 아니면 패배들과 제국주의 반동을 향하여 더욱 경도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인지 여부가 문제이다.
글로벌 사우스에서는, 고질적인 저발전과 미국 제국주의의 공세가 사회적 위기와 격화되는 불안정을 규정하고 있다. 제국주의의 목 졸라 죽이기, 국내에서의 쇠퇴, 그리고 국내에서의 점증하는 분노의 융합이 부패한 민족부르주아지 계급에 대한 압력을 쌓아가고 있는데, 이것이 민족부르주아지 계급들을 탄압, 보나파르티즘, 그리고 통일된 투쟁을 막는 민족적 분열들로 밀어붙이고 있다. 혁명가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진지한 준비이다. 혁명가들은 분출하는 각각의 운동의 꽁무니를 쫓거나 혹은 “순수한” 계급투쟁의 추상적인 방책들에 의존하는 것이라는 함정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대중들의 요구들을 제국주의적 지배로부터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과 융합시키는 것이 그 임무이다.
3부: 혁명적 강령
누구도 프롤레타리아트를 위하여 혁명적 고양의 길을 미리 닦는 수고를 해오지 않았다. 필연적인 중단들과 부분적 후퇴들과 함께, 프롤레타리아트는 수많은 장애물들로 인하여 이리저리 막히고 과거의 잔재들로 뒤덮인 길 위에서 전진해 가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에 겁먹은 자들은 비켜서 있는 편이 나을 것이다.”
-레온 트로츠키, “공산당들과 인터내셔널을 새롭게 건설하기” (1933년)
미국 제국에 맞서 투쟁하라!
미국 제국주의는 세계를 야만주의로 끌어내리는 주요한 세력이다. 그래서 미국 제국에 맞서는 투쟁은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와 모든 곳의 피억압 인민들에게 중심적인 것이다. 미국의 노동계급은 끊임없는 전쟁들, 긴축정책, 그리고 생활수준에 대한 공격들을 통하여 그들의 지배계급의 전지구적 야심들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제국주의 나라들과 미국에 줄을 대고 있는 반식민지들 전역에서, 지배계급들은 기존 질서와 깊게 결탁된 채로 있다. 그것이 나토와 범대서양주의에 대한 충성이건, 재무장을 하고 있는 일본이건, 혹은 인도양의 쿼드 안보협의체이건, 미국과의 동맹에 반대하는 것은 이들 나라들의 지배계급들에 맞서는 투쟁의 필수적인 부분을 이룬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병사들이 서구 제국주의자들과 이들의 우크라이나 꼭두각시들의 이해관계를 위하여 대량학살로 보내지고 있다. 경제재제들, 경제적 압력과 군사적 위협에 직면하고 있는 신식민지 나라들과 노동자국가들에서는, 민족적 그리고 사회적 억압에 맞서는 투쟁이 제국주의 지배와 민족 부르주아지 계급들의 타도를 제기하면서 수백만 명을 행동으로 이끌 것이다. 모든 곳에서,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는 투쟁은 국경들을 가로지르는 노동자들의 단결, 그리고 기존 세계질서에 도전할 능력을 갖춘 국제적인 혁명적 지도부 건설을 위한 기초를 제공한다.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전략을 위하여
혁명가들은 미국 제국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대를 건설해야만 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문제는 어떤 정치적 전략과 투쟁방책들이 진보적 방식으로 미국 제국을 실제로 패배시킬 수 있는지 여부이다. 야만주의로부터 인류의 해방은 경쟁하는 지배계급이나 지정학적 블록들 중 어느 하나의 승리가 아니라,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승리에 달려 있다. 반제국주의 투쟁의 수단과 방책들은 이 투쟁의 목적들과 분리되지 않는다: 정치적 독립성과 노동대중들의 단결을 건설하는 방책들만이 허용될 수 있다. 이것과 반대되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궁극적으로 민족적 분열들을 심화시키고, 지배계급들을 강화하며, 그래서 제국주의에 맞서는 투쟁을 약화시킨다.
이것이 “진영주의”의 주요한 오류이다. 진영주의는 반제국주의 투쟁의 지침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자성을 거부하며, 그것의 계급적 성격이나 정책들과는 무관하게 미국과 그 동맹들에 반대하는 어떠한 세력이라도 지지한다. 이 논리 하에서는, 단순히 러시아나 이란 이슬람공화국 같은 나라들, 혹은 브릭스 플러스 같은 동맹들이 미국 패권에 대한 도전을 보여주기 때문에, 저항의 진보적 세력들로 대접을 받는다. 차악주의라는 이러한 논리는 그들이 적을 약화시킨다는 근거로 이들 세력들에 의하여 자행되는 범죄들과 억압을 정당화 것에 이른다.
이러한 접근의 결과들은 재앙적이다. 예를 들면, 러시아가 나토의 대리인과 싸우고 있다는 것에 근거하여,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편을 드는 것은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는 투쟁에서 차악으로서 우크라이나 인민들에 대한 민족적 억압을 받아들이고 정당화한다. 동유럽의 노동계급을 각자의 지배자들에게 묶어 세우고, 그래서 이 지역에서의 현재의 상태에 책임이 있는 지배세력들, 즉 미국, 유럽연합, 그리고 나토에 맞서는 노동계급의 혁명적 단결을 막으면서, 이것은 동유럽에서 노동계급을 더욱 분열시킨다. 똑같은 논리가 이란에 적용되는데, 미국에 맞서 이슬람공화국을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친제국주의 세력들이 쿠르드 대중들과 기타 억압받는 소수계들의 구세주로서 억압정권에 맞서 개입할 기회를 열어주고 그래서 이 지역에서 분열들을 심화시키고 제국주의의 지배를 강화하면서 쿠르드 대중들과 기타 억압받는 소수계들을 밀쳐낸다. 두 가지 경우 모두에서, 프롤레타리아트 전략을 제기하는 가운데 미국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공산주의 기치 하에서의 민족해방을 위하여!
미국 제국주의의 공세는 글로벌 사우스 나라들을 더욱 종속시키고 완전히 파괴하며,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에 점점 더 많은 긴급성을 부여하고 있다. 혁명가들은 미국과 미국의 동맹들의 경제적 그리고 군사적 약탈에 반대해야만 하는데, 그들의 전쟁들, 경제제재들, 그리고 강제가 피억압 민족들에게 대파괴를 자행하고 있다. 이것은 팔레스타인으로부터 이란과 쿠바에 이르기까지, 직접적인 위협 아래에 있는 세력들과 같은 편에 서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곳에서 민족적 억압에 굳건하게 반대하는 것은 제국주의에 맞서 국제 프롤레타리아트를 단결시키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민족 전체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하여 민족주의를 이용하는 민족 부르주아지 계급에 반대하는, 민족해방투쟁의 지도부를 위하여 싸우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임무이다. 착취계급으로서 민족 부르주아지 계급은 자기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궁극적으로 대중들의 독립적인 투쟁조직화를 억제하거나, 분산시키거나 혹은 격파하려고 할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제국주의에 맞서는 투쟁을 배신할 것이다. 혁명가들은 제국주의에 맞서는 투쟁을 앞으로 밀어붙임으로써 민족 부르주아지 계급의 동요를 폭로해야만 한다.
맑스주의 반제국주의 운동은 두 가지 잘못된 경향들로 분열되어 있다. 한가지 경향은 대중들의 진정한 열망들을 포기한 채 사회주의 혁명을 선포하면서 민족해방투쟁들을 생래적으로 부르주아지적인 것으로 거부한다. 그렇게 하면서, 이 경향은 대중들을 민족주의자들의 지도부에 내맡긴다. 두 번째 경향은 비슷하게 대중들을 민족주의 세력들에 결박시키고 피억압 그룹들을 친제국주의 세력들에 의한 술수에 넘겨주면서 민족 부르주아지 계급, 특히 그들의 급진세력 혹은 반제국주의 세력의 꽁무니를 쫓는다. 두 가지 경향들 모두가 민족해방투쟁을 위한 프롤레타리아트 지도부 건설이라는 중심적 임무를 포기한다
노동자들과 농민들의 동맹을 위하여!
직접적인 식민지 그리고 신식민지 지배 때문에, 해결되지 못한 민주주의적 문제들이 반식민지 세계의 결정적인 요소로 남아 있다. 그것들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수백만의 빈농들,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정착농민들, 그리고 농업노동자들의 운명인 토지 문제이다. 반식민지들에 대한 미국 제국주의의 공세가 이러한 층들을 최우선적인 희생자들의 일부로 만든다. 미국 제국주의의 자연자원들에 대한 통제권에 대한 무자비한 추구, 농경 복합기업체들의 확장, 토지에 대한 투기, 그리고 위기들과 전쟁들에 의하여 야기되는 가격의 상승이 인민의 이들 층들을 더욱 유린하고 있다.
종종 친족관계라는 유대를 통하여 지방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노동계급들 또한 공격을 당하며, 그래서 이들 노동계급들은 더욱 심화되는 종속에 맞서 지방의 대중들과 민족전체를 방어하는 것에 물질적 이해관계를 가진다. 혁명가들에게 유일한 공세적인 길은 생활조건들을 공동으로 방어하기 위하여 노동자들과 빈농들의 동맹을 건설하는 것이다. 혁명가들의 임무는 반제국주의 투쟁으로 전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이 동맹을 건설하는 것과 미국의 공세에 맞섬에 있어서 민족 부르주아지 계급의 무기력함을 폭로하는 것이다.
중국을 방어하라! 중국공산당 관료들을 타도하라!
20세기 대부분의 시대 동안 소련방어가 그러했듯이, 중국방어는 다가오는 시대에 혁명가들에 대한 결정적인 시험이 될 것이다. 1949년 혁명과 별개로는 중국을 이해할 수가 없다: 비록 혁명의 성취들의 많은 것들이 상당히 훼손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혁명이 창출했던 사회적 기초들은 전복되지 않았다. 과거의 지배계급들을 파괴했던 인민해방군은 이 혁명과정에서 출현했던 국가의 무장세력으로 남아 있다. 중국의 부상에 의하여 전지구적 지위가 점점 더 많이 도전받고 있는 미국 제국주의에게는, 중국에서의 반혁명이 전략적 필수성이 되어왔다. 그러므로 중국방어는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는 투쟁과 분리될 수 없다.
소련붕괴는 프롤레타리아트 사회질서의 패배가 단지 하나의 나라를 변형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구적 세력균형을 변경시킨다는 것을 증명했다. 소련에 대한 미국 제국주의의 승리는 전례가 없는 패권의 시대를 열었고, 이것이 미국으로 하여금 훨씬 더 작은 제한 속에 자신의 힘을 투사하도록 해 주었다. 중국에서의 비슷한 패배는 지구상 생산력 최대 집중 지역들 중 하나의 파괴와 종속이라는 심지어 더욱 큰 역사적 좌절을 의미할 것이며, 국제적으로 노동자들의 조건들을 악화시킬 것이다. 그러므로 단지 중국의 운명만이 아니라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운명이 문제인 것이다. 중국을 방어하지 않거나, 중국을 미국과 동일시하는 것은 제국주의의 공세를 강화하고 야만주의로의 추락을 가속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중국방어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독립성과 분리될 수 없다. 중국방어는 중국공산당 관료집단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의미하지 않는데, 중국공산당 관료집단은 제국주의 질서에 도전하기 위하여 국제 노동계급에 의지하기 보다는 제국주의 질서와의 협조를 추구한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증명해왔다. 사실, 중국공산당은 자신의 민족주의적인 군사, 정치, 그리고 무역 정책들을 통하여 다른 나라들의 노동인민들을 적극적으로 밀쳐낸다. 중국방어는 그들의 지배가 혁명의 성취를 방어하고 확장함에 있어서 노동계급이 결정적인 세력으로서 행동하는 것을 막는 중국공산당 관료집단에 맞서는 투쟁과 융합되어야만 한다.
인민전선을 박살내라!
부상하는 우익에 대응하여, 좌익에서 성장하는 한 경향이 반동을 봉쇄하기 위하여 “진보적” 세력들과의 동맹을 추구하며, 이 과정에서 계급적 독립성을 포기한다. 이것이 인민전선인데, 이것은 노동자운동을 부르주아지 계급의 자유주의 세력에 결박한다. 인민전선은 노동계급이 우익반동의 물질적 기반에 맞서는 독립적인 투쟁을 전개하는 것을 막는다.
인민전선의 기록이 그 자신을 폭로한다. 인민전선은 항상 반동을 멈추는데 실패한다. 기껏해야, 인민전선은 그 과정을 늦출 뿐이고, 반동은 결국 더욱 강해진 채 돌아오게 되어 있다. 프랑스에서는, 반복되었던 “공화”동맹이 나라의 우경화를 멈추지 못해왔고, 이제 극우가 그 어느 때보다 권력에 더욱 가까이에 있다. 인도에서는, 인도국민회의(Congress), 공산당들, 그리고 기타 부르주아지 정당들의 연합이 인도인민당의 권력 공고화를 깨뜨리지 못해왔다. 교훈은 분명하다: 우익에 연료를 주입하는 세력과의 연합으로는 우익을 깨뜨릴 수 없다.
혁명가들의 임무는 인민전선을 박살내는 것이다. 이것은 인민전선을 규탄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노동자들과 피억압 인민들이 부르주아지 계급과의 연합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얼마나 해로운지 구체적으로 목격해야만 한다. 이것은 혁명가들이 한편에서의 기층의 열망과 다른 한편에서의 지도부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전략 사이의 모순을 첨예하게 만들기 하기 위하여 미국의 DSA, 프랑스의 멜랑숑 당, 혹은 인도의 공산주의 정당들 같은 조직들을 향하여 개입하고 전술을 제기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그러한 전망을 위한 투쟁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노동계급과 좌익을 계급의 적의 수중에 버려둘 수 있을 뿐이다.
통일전선을 위하여!
우익 반동의 부상은 좌익 활동가들에 대한 국가탄압의 증가는 물론 파시스트 공격들과 도발들의 증가를 의미해왔다. 보다 폭넓게, 생활수준과 민주주의적 권리에 대한 제국주의의 공격에 직면하여,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자운동은 자주 분열되어 있고 허약하다. 이것에 맞서기 위하여, 공산주의자들은 통일전선을 주창해야만 한다. 통일전선의 목적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이해관계에 입각한 투쟁에서 가능한 한 광범위한 세력들을 단결시키기 위한 것이어야만 한다.
하지만, 이 간단한 지점이 좌익에게는 거대한 혼란의 원천이다. 한편에서는, 공격에 직면하여 피억압 인민들을 분열된 채 놓아 두면서, 많은 사회주의 조직들이 비혁명적 세력들과 어떠한 블록이라도 형성하는 것을 기회주의적이라고 믿는다. 다른 한편에서는, 통일전선이라는 이름으로 기회주의적 임시방편들을 정당화하는 것이 사회주의자들에게는 흔한 일이다. 대게는, 이것은 통일전선이라는 전술(가장 광범위한 세력들을 결집시킬 필요성)을 그것이 복무해야만 하는 전략의 상위에 두는 형식을 취한다. 트로츠키가 아래와 같이 설명 했듯이:
“따로 행진하지만 다 함께 타격하라! 어떻게 타격하고, 누구를 타격하고, 언제 타격할 것인지에 대해서만 합의하라! 그러한 합의는 심지어 악마 그 자신, 그의 할머니, 그리고 심지어 노스케와 그레진스키와도 이루어질 수 있다. 자신의 손을 묶지 않는다는 하나의 조건에서.”
-“파시즘에 맞서는 노동자통일전선을 위하여” (1931년 12월 8일)
그래서, 통일전선이 노동자운동의 이해관계에 입각한 어떤 대의에 복무하는 한, 통일전선은 노동조합 관료들로부터 부르주아지 정치인들에 이르기까지 어느 세력과도 맺어질 수 있다: 파시스트 공격을 물리치기 혹은 수감된 활동가들의 석방을 촉구하기에서 파업을 방어하기와 생활수준들에 대한 공격에 맞서 싸우기에 이르기까지 모두. 결정적으로, 이것은 특정 제국주의 공격에 맞서는 민족주의 세력들이나 저항 세력들과 단결하는 것도 포함한다 – 반제국주의 통일전선.
통일전선의 결정적인 목적은 심지어 노동계급의 가장 부분적인 투쟁들을 제기하는 것에서 조차 부르주아지 계급과 비혁명적 인자들의 자유주의적 그리고 합법주의적 전략들보다 혁명적 전략이 우월함을 실천으로 증명하기 위함이다.
피억압 인민들을 단결시키고 자유주의자들을 내다 버리라!
자유주의 질서의 와해와 우익의 부상이 노동계급 내부에서의 사회적 적의들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주 노동자들과 국내에서 태어난 노동자들 사이의, 흑인 노동자들과 백인 노동자들 사이의, 여성과 남성 사이의, 그리고 성전환 권리와 같은 문제를 둘러싼 분열들이 점점 더 피억압 인민들을 표적으로 하는 무기가 되고 있다. 우익은 사회적 쇠퇴에 대한 분노가 소수계를 향하도록 하고, 한편 자유주의자들은 이 분열들에 더욱 단단히 자리를 잡는 가운데 도덕적 호소들과 정체성 정치를 통해서 대응한다. 반식민지 나라들에서는, 이 분열들이 종종 종족적 분쟁과 유혈사태로 귀결된다. 혁명가들은 이 분열들을 극복하기 위하여 투쟁하고 대중들의 투쟁을 강화하기 위하여 필수적인 단결을 건설해야만 한다.
이 단결은 피억압 인민들을 방어하는 것이 전체로서의 노동계급의 물질적 이해관계에 입각해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건설되어야만 한다. 편협함과 배외주의는 노동계급의 일부를 서로 싸우게 함으로써 지배계급에 대한 투쟁을 약화시킨다. 예를 들면, 영국으로부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이르는 나라들에서 이주자들 및 난민들과 관련한 분열들이 부족한 일자리들, 붕괴되는 공공서비스들, 그리고 악화되는 생활조건들과 같은 사회적 쇠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책임은 이주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이해관계를 보호하기 위하여 사회가 쇠퇴하도록 해온 지배계급들에게 있다. 해법은 지배계급에 맞서는 모든 노동자들의 단결된 투쟁이다.
하지만, 많은 맑스주의 좌익은 반동적 사상들로부터 노동자들을 획득해 내기 위한 전략도 없이 그것들과 그것들을 지지하는 자들을 규탄하거나, 경제적 요구들을 위하여 피억압 그룹들의 특정한 투쟁들을 제쳐두면서 경제주의를 채택한다. 어떤 자들은 노동자들을 반동의 영향력 하에 버려두며, 다른 자들은 분열들을 온전하게 놔두고 소수계들을 자유주의자들의 품 속으로 밀어 넣는다. 노동계급의 해방을 전진시키기 위하여, 혁명가들은 두 가지 실책들 모두를 거부하고, 노동계급이 어떻게 모든 피억압 인민들의 대의를 주창해야만 하는지를 보여주어야만 한다.
노동조합을 혁명적 기관들로 바꾸라!
노동계급은 그들의 생활수준들, 권리, 그리고 조직들에 대한 증가하는 공격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조합들은 수십 년 동안의 패배들과 노동조합 관료집단들의 계급협조주의적 방침으로 약화된 채 이 시대에 진입한다. 이것에 맞서, 혁명가들은 계급투쟁 지도부를 위하여 노동조합들 내부에서 투쟁해야만 한다.
이것은 임금들, 노동조건들, 그리고 민주주의적 권리를 둘러싼 투쟁들을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맞서는 보다 폭넓은 투쟁과 연결하는 가운데 이것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모든 전투들에 개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또한 편협한 직종적 한계들로부터 벗어나는 것과 노동자들의 비조직 층들을 조직화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오직 그러한 구체적인 투쟁들을 통해서만, 노동조합 최고위층들의 영향력을 패배시킬 수 있고, 노동조합들이 프롤레타리아트 저항의 진정한 기구들로 변형될 수 있다. 불행하게도, 많은 혁명적 좌익이 이러한 관점으로부터 노동조합들에 접근하지 않는다. 그들이 영향력을 가지는 노동조합들에서, 기회주의와 초좌익주의라는 쌍둥이 흑사병들이 그들의 활동을 망친다.
기회주의는 “좌파” 관료들을 지지하거나 혹은 단순히 기존의 관료집단이 더욱 전투적이어야 한다고 주창하면서 기존 노동조합 지도부들에 순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혁명적 기초 위에서 관료집단을 대체하기 위한 투쟁을 관료집단에 대한 압력으로 대체한다. 좌익세력들이 노동조합 기구들에 대한 통제력을 장악하지만 관료적 방책들을 유지할 때, 혹은 노동조합 활동이 인종, 민족 그리고 성적 분열들에 맞서 계급을 단결시키기 위하여 필수적인 정치투쟁들을 회피하는 가운데 즉각적인 경제적 요구들로 전락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초좌익주의는 정반대의 오류이다: 초좌익주의는 관료집단에 대한 반대파 건설이라는 인내심 있는 활동을 모험주의적 대결로 대체하거나 노동조합들이 관료집단에 의하여 통제되고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으로부터 완전히 기권한다. 순응을 통해서건 혹은 포기를 통해서건, 이 일탈들은 관료집단의 영향력을 온전하게 놔두고 노동계급의 패배들에 책임이 있는 세력들을 강화한다.
4부: 혁명적 재편의 임무
“대중 행동들은 일반적으로 부차적이고 부분적인 의견불일치들을 씻어내고, 우호적이고 가까운 경향들의 융합을 돕는 경향이 있다. 역으로, 정체기나 쇠퇴기의 이념적 그룹들은 분화, 분열들, 그리고 내부 투쟁들을 향한 강력한 경향을 드러낸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뛰어 넘을 수 없다. 우리는 그 시대를 통과해야만 한다. 명료하고 적확한 이념적 분화가 무조건적으로 필요하다. 이것이 미래의 성공들을 예비한다.”
-레온 트로츠키, “공산주의 반대파 내부의 그룹들” (1929년 3월 31일)
맑스주의 운동은 곧 있을 격변들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맑스주의 운동은 작고 수없이 많은 경쟁 그룹들로 쪼개져 있으며 노동계급들로부터 점점 더 많이 소외되어 있다. 이 위기는 단순히 불리한 조건들의 결과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정치적 방향감각 상실의 결과이다: 우익이 현재의 역풍을 활용할 수 있도록 빌미를 주면서 앞선 시대의 자유주의 세계질서에 대한 혁명적 반대를 건설하지 못한 것.
미국이 과거의 기성질서를 찢어발기고 반동적 재편을 추구하면서, 좌익은 세계의 사태들을 규정하는 근본적인 동역학들에 대한 방향감각 상실의 수렁에 빠져있다. 미국의 패권이 이미 붕괴되었다고 주장하고 중국과 러시아를 미국과 같은 반열에 놓는 그룹들이 있다. 다른 그룹들은 또한 중국과 러시아를 반제국주의 영웅으로 찬양함으로써 정반대의 실수를 반복한다. 정치의 장에서, 좌익의 광대한 다수가 잘못된 지도자들에게 알리바이를 제공하고 다가오는 전투들을 위한 계급 세력균형을 엄청나게 잘못 계산하면서, 최근 몇 년 동안 국제 프롤레타리아트가 겪은 패배들을 부정하거나 최소화한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단기간 내에 맑스주의자들을 위한 중대한 돌파구들이 있을 것으로 예측한다. 주식시장처럼, 이 환상들은 이것들이 현실과 충돌하면서 곧 터질 것이다.
우리는 좌익의 위기를 해결해왔다거나 우리가 모든 해답들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데, 그런 것은 바보들이나 할 주장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가오는 시대를 위하여 맑스주의적 분석과 강령의 일부 핵심적인 요소들을 제기해왔다. 우리는 이 시대의 시급한 임무들을 개괄하려고 애써 왔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독립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는 투쟁을 건설하기, 노동자들을 자유주의 세력들에 종속시키지 않으면서 우익반동에 맞서 투쟁하기, 민족해방을 주창하기, 그리고 피억압 인민들의 투쟁들을 혁명적 계급 관점과 통합하기. 우리의 이러한 접근방식은 국제적인 사태전개들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에 기초해왔다. 우리는 이러한 노선을 중심으로 맑스주의 운동의 재편을 위해 노력한다.
그러한 재편은 강령적 그리고 이론적 명확화라는 끈기 있는 작업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잘못된 지도자들의 배신들을 폭로하고 혁명적 강령의 필요성을 실천적으로 증명하면서, 혁명가들은 전체로서의 노동계급의 독립적 이해관계에 조응하는 방향으로 대중들의 구체적인 투쟁들을 선도하기 위하여 노력해야만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정치적 명확화와 통일을 위한 기초가 건설될 수 있다. 오직 이 방식으로만, 혁명운동은 보수주의, 관료주의, 그리고 종파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 오직 이 방식으로만, 우리는 시대가 요구하는 혁명적 지도부를 건설할 수 있다.

